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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우리에게 국가는 무엇? 일곱 살 소녀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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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토우의 집
권여선 지음
자음과모음, 336쪽
1만3000원

아직까지 작가 권여선(49)을 모르는 독자가 있다면 꼭 일독을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도 읽는 맛을 더하지만 다 읽고 나면 작은 사건이나 사물 하나 허투루 갖다 쓴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무심코 지나쳤던 사물이 알고 보니 핵심 사건을 예고하는 복선이었고, 영화로 치면 단역에 불과한 주변 인물이 소설의 주요 메시지를 말하거나 하는 식이다. 장편이지만 200자 원고지 500∼600쪽쯤 될까.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다.

 소설은 ‘사법 살인’으로 악명 높은 1970년대 인혁당 사건을 연상시키는 공안사건을 다룬다. 하지만 작심하고 국가 폭력을 비난하지 않는다. 시선을 돌려 희생자 가족과 주변 인물들의 고통과 슬픔을 처절하게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

세 번째 장편 .토우의 집.을 낸 소설가 권여선씨. 국가 폭력에 희생당한 피해자 가족의 고통을 다뤘다. [중앙포토]

 소설은 천천히 시동을 건다. 삼악산 아래 삼벌레고개라고 불리는 가상의 동네가 배경이다. 일곱 살 여자 아이 원(외자 이름이다)과 동갑내기 남자 친구 은철이 벌이는 놀이와 모험이 소설의 뼈대를 이룬다. 남편이 중동에 돈 벌러 가 팔자가 늘어진 사우디집, 정체불명의 무당집 운문원에서 공양내기로 일하는 똥순할매가 지나갈 때마다 수줍게 기립하는 뚜벅이할배 등 개성적인 주변인물이 가세해 소설을 살찌운다. 그들의 자잘한 사연과 일상, 월남치마·버스 차장·계모임 등 70년대를 환기하는 물건 목록이 잔재미를 선사한다.

 이들이 사는 곳은 삼벌레고개에서도 부유한 아랫동네, 장애인·깡패가 많이 사는 윗동네 사이에 낀 중간 동네다. 중산층 동네인 셈인데 그곳의 인심은 소문과 이해 관계에 따라 순식간에 바뀌곤 한다.

 권씨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는 아마도 슬픔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일 게다. 고통의 내용이 무엇인지, 왜 고통스러운 사건이 자신에게 닥친 것인지조차 분별 못 하는 존재, 어린 아이의 아픔을 바라보는 일은 힘겹다. 원은 아버지의 죽음 자체보다 그 죽음으로 인해 어머니가 망가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 끝내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 아이들은 회복할 수 없이 망가진 것들 때문에 울고, 닥쳐온 시련이 지나치게 가혹하고 억울해 그저 운다.

 이들의 슬픔을 통해 권씨가 결국 말하고 싶었던 것은 소설 마지막, 고성한씨의 노래 가사에 담긴 메시지일 게다. 본명 대신 ‘괴상한’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그는 예술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미모의 화가 아내를 둬 큰 집에서 살며 허구헌 날 술추렴이 주요 일과인 그는 이런 알쏭달쏭한 노래를 읊는다.

 ‘오래전 이곳에 삼악산이 있었지/북쪽은 험하고 아득해 모르네/남쪽은 사람이 토우가 되어 묻히고/토우가 사람 집에 들어가 산다네/그래 봤자 토우의 집은 캄캄한 무덤’.

 국가 권력이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벼랑 끝으로 내모는 한 그 나라는 생명 없는 흙인형, 토우(土偶)가 사는 곳일 뿐이라는 얘기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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