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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의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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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중국 신문을 읽다 놀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부패 관리가 받았다는 뇌물 액수 때문인데 우리 돈으로 따지면 조 단위를 훌쩍 넘기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지방 하급 관리가 아파트를 수십 채씩 보유하고 있다 발각된 사례도 자주 나온다. 대국답게 스케일이 커서라기보다는 뭔가 제도적 허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중국에서 부패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빈부격차다. 부패와도 상관관계가 있지만 부패를 해결한다고 빈부격차가 저절로 사라지는 건 아니다. ‘피케티 신드롬’이 중국에 상륙한 것도 중국인 스스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게다. 부의 편중과 불평등을 화두로 삼은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은 중국에서도 베스트셀러다. 지난달 중국을 방문한 그는 가는 곳마다 “중국의 빈부 격차를 해결하기 위한 처방전은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평등해야 할 사회주의 국가의 불평등을 자본주의 경제학자에게 묻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피케티는 이렇게 답했다. “윗 세대로부터 부를 물려받는 젊은이가 많아지면서 중국의 계급 유동성이 크게 떨어졌다. 한 자녀 정책을 시행해 온 중국에선 상속세 도입이 대단히 중요하다. 부동산에도 과세하고 누진세율을 적용해야 한다.”

 중국에서 상속세가 없는 건 왜일까.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초기 지도자들은 중국에 공산주의가 실현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믿었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나눠 갖는 공산사회가 되면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필요도 없는 게 사유재산이다. 재산이 없으니 당연 세금이 없다. 이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거쳐 2004년 개정 헌법에서 사유재산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상속세를 도입하기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덩샤오핑의 가르침인 선부론(先富論)에 따라 먼저 부자가 된 세력의 저항 때문이다. 지난해 3중전회를 앞두고서도 상속세 도입 논의가 일었지만 결국은 실현되지 않았다.

 부패 관리가 수십 채의 아파트를 갖는 것도 세제와 관계 있다. 주거용 부동산은 과세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세금 걱정 없이 돈이 생기는 대로 아파트를 ‘수집한’ 것이다. 재산세(부동산세)를 매기려 해도 세원 파악의 기본인 등기제도가 확립돼 있지 않다. 모든 토지는 국가 소유이기 때문에 완벽한 등기제도를 갖출 필요가 없었던 탓이다. 현실은 어떤가. 개인에게는 토지사용권만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값은 서울 강남보다 더 비싼 나라가 중국이다.

 요즘 중국에서 가장 강조되는 구호가 의법치국(依法治國)이다. 그 첫걸음은 불비한 법과 제도는 새로 만들고, 기존의 법과 제도는 현실에 맞게 고치는 일이다. 멀고 험해도 꼭 가야 할 길이다. 피케티가 아니라 그 어떤 명의가 내린 것이라 해도 처방전만으론 병을 못 고친다. 적절한 약재를 찾고 잘 배합해 약을 짓는 일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고 보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론』 중국어판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정치 민주화와 경제 민주화는 반드시 함께 온다.”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