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은 고차 방정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지난주 초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타결이 해를 넘길 것이란 보도가 나왔다. 양국 의회 심의 등 국내 절차에 걸리는 시간을 역산한 일정이 지체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나저제나 원자력은 민감하고 복잡하고 공평치도 않다. 그러니 협상 테이블에 앉은 양측의 막판 조율이 쉬울 리 없다.

 원래 1956년에 체결된 이 협정은 두 번 개정됐고, 67년 발전용 원자로 3기 건설계획을 계기로 74년에 개정 발효됐다. 78년 고리 1호기 가동은 그 결실이었다. 당시 설계·구매·제작·시공은 웨스팅하우스사의 몫이었고 우리는 단순노동을 맡았다. 그런 나라가 31개 원전국가 중 설비용량 순위 5위가 됐다. 2009년에는 아랍에미리트(UAE)로 진출, 미국·프랑스·일본·러시아·캐나다에 이어 여섯 번째로 수출국 반열에 올랐다. 이젠 우리도 핵연료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하고 수출 경쟁력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렇다면 그런 요구가 미국과 국제사회에 얼마나 통할 수 있을까, 그것이 문제다. 원자력에서는 주권이나 산업경제 논리가 먹혀들지 않는다. 원천적으로 군수와 민수의 이중용도(dual use)라는 굴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한네스 알벤(Hannes Alfven)은 “평화를 위한 원자와 핵무기를 위한 원자는 샴쌍둥이”라고 했다. 원전과 핵폭탄 기술이 한 몸이란 뜻이다.

 미국은 원전산업의 원조다. 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Atoms for Peace)’을 제창한다. 이듬해엔 원자력 에너지법을 개정, ‘원자력 관리에 대한 감시를 수용하는 것을 전제로 어느 나라든 원자로를 제공’하게 된다. 그로써 57년 말까지 23기 연구용 원자로를 수출하고, 49개국과 원자력 협력 상호조약을 체결한다. 이는 실상 미·소 냉전시대 미국의 전략적 승부수였다.

 70년에는 국제 핵확산금지조약(NPT)이 발효된다. 미·러·영·프·중은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되고, 다른 나라는 원자력 활동에 철저한 제한을 받게 된다. 우리는 75년, 북한은 85년에 가입한다. 91년에는 한국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 이어 92년에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나온다. ‘남과 북이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보유하지 않고, 농축시설과 재처리시설을 갖지 않겠다’는 선포였다. 그러나 북한은 93년과 2003년에 NPT 탈퇴를 선언했다.

 미국의 재처리 정책은 어떤가. 77년 카터 대통령은 재처리를 중단키로 하고 핵비확산의 기수(旗手)로 나선다. 이 조치의 근거는 두 가지였다. 첫째 재처리 비용이 핵연료를 한 번만 태우는 비순환 우라늄 핵연료주기 운영비보다 높다는 것, 둘째 재처리 기술이 퍼질 경우 핵확산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것. 재처리의 습식공정(PUREX)에서는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이 분리되기 때문이다.

 협상에서 우리 쪽은 건식 파이로공정(Pyroprocessing)은 재활용(Recycling)이고 핵확산에 걸리지 않는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은 플루토늄이 혼합물 상태로 얻어지는 건 맞지만 분리기술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에 재처리(Reprocessing)와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고 본다. 기술 상용화까지는 갈 길도 멀다.

 지난해 10월 서울을 찾은 아인혼(R Einhorn) 전 국무부 비확산 군축담당 특보를 원탁회의에서 만났다. 협정 개정 시작에서 수석대표였던 그는 진행 중인 양국의 파이로공정 공동연구에 대해 긴밀한 파트너십의 의미를 부여했다. 농축에 대해서는 핵연료 가격이 안정적이며, 독자적 시설 건설에 비해 해외 농축회사의 지분 매입이 경제적이라고 진단했다.

 협정 개정에서 일본 사례가 거론된다. 핵무기 비보유국이면서도 재처리 허용을 받아낸 외교력을 보라고. 그러나 80년대 일본과 2010년대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일본은 정작 실익도 못 얻고 있다. 고속로 사업은 중단되고, 사용후 핵연료는 중간저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정에 대한 대내 협상도 쉽지 않다. 원자력계와 국민의 정서, 무엇보다 의회의 시각이 변수다. 양국의 보수와 진보의 반응은 두루 복잡하다. 미국의 11월 중간선거에서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이 핵확산에 대해 더 단호하다는 것도 복병이다.

 동북아 원전 클러스터를 전망할 때, 국가 에너지 안보를 고려할 때 기술 자립도를 갖춘 원자력의 연구개발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국제기준을 지키고 국제신뢰를 쌓고 국제협력으로 나아가는 것이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다. 협정 개정안은 원자력 연구개발 관련 자율성을 확대하고 핵비확산 준수를 확실히 약속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미묘한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지구촌의 보편적 가치 추구에 동참할 수 있는 세계시민 의식이 필요한 때가 지금인 것 같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