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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 내부 발굴 시작, "경주 정체성 확보와 대통령 공약 이행 위해"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한국고대사 유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곳으로 꼽히는 신라 월성에 대한 역사적인 내부 발굴이 시작된다.

월성은 935년 신라 멸망에 이르기까지 정확히는 835년간 신라왕이 대대로 거주하는 왕성이었다. 이는 기록만으로 나타낸 것으로, 실제로 월성은 천년 왕국과 운명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흔히 천년왕성이라 일컫는다.

이에 월성 세부 발굴조사에 착수했음을 알리는 개토제(開土祭)는 12일 오후 2시 현장에서 개최한다.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11일 오전 11시 월성에서 언론을 대상으로 현장설명회를 연다. 월성을 어떤 계획에 따라 어떻게 발굴조사하고 보존정비해서 활용할 것인지를 공개하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월성 내부 발굴에 적어도 40년은 걸릴 것이라고 전망한다. 문화재청은 이번 월성 발굴에 천년고도 경주의 정체성 확보와 대통령 공약사항 이행 뒷받침이라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국민 문화향유 권리 보장을 위한 발굴현장 상시관람 및 전시·홍보체제를 운영하는 한편 발굴조사와 복원·정비를 동시에 추진할 방침이다.

한편 월성의 발굴조사는 1915년 일본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에 의해 최초로 이뤄졌다. 이후 1979~1980년 동문지를 조사해 정면 1칸, 측면 2칸 규모의 문터를 확인하고 성벽에 대한 대략적인 토층 상황과 석축 해자 유구를 확인했다. 1984~1985년에는 성벽 바깥에서 해자 발굴에 들어가 그 규모와 성격을 파악했으며, 해자가 기능을 상실한 후 통일신라시대에는 건물을 지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어 1985~2014년 1~5호 해자와 계림 북편 건물터, 첨성대 남편 적심(積心) 건물지, 월성 북서편 건물지 등을 확인했다.

하지만 내부에 대한 본격 발굴조사는 없었다. 대신 2003~2004년 지표조사를 통해 월성의 자연적·인위적 훼손 양상을 확인, 70여 기에 이르는 초석과 연못터, 우물터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한편 ‘在城(재성)’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를 수습한 바 있다. 2007년에는 월성 내부 지하 레이더 탐사를 통해 2·3·6·9·14구역에 중요한 건물터가 집중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온라인 중앙일보
‘경주 월성 내부 발굴 시작’ [사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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