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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이 있다면 투명인간이 돼 북에 가고 싶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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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의 국무부에서 열린 탈북자 토론회에 참석한 조셉 김(왼쪽)과 박연미씨.

“마법이 있다면 투명인간이 돼 북한에 가고 싶다.”

10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의 국무부 청사. 로버트 킹 국무부 인권특사와 톰 말리노스키 인권ㆍ노동 담당 차관보가 자리한 토론회에서 탈북자 조셉 김(24)은 한 청중이 “마법이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투명인간이 되면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고 북한에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의미다. 김씨는 “하지만 불행히도 지금 나는 북한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마법의 힘보다 북한의 변화를 바라는 우리의 의지가 더 강하다고 나는 믿는다”고 말했다. 100명 가까운 청중들이 앉아 있던 국무부 1층의 강당은 일순 숙연해졌다.이날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국무부는 탈북자인 김씨와 박연미(21)씨를 청사로 초청해 토론회를 열었다.

두 탈북 젊은이가 담담하게 밝힌는 기구한 인생사는 계속 이어졌다. 2006년 16살에 중국으로 탈북해 미국으로 왔던 김씨는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수백만명 북한 주민들의 이야기”라며 누이를 잃은 사연을 털어놨다.

“나는 함경북도의 국경 마을에서 자랐다. 그런데 2002년 12살 때 아버지가 굶어서 돌아가셨다. 이후 먹을 게 없어 어머니와 누나는 식량을 구해 중국으로 넘어갔다. 그때 본 누나의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어머니와 누나는 중국에서 공안에 잡혔고 어머니만 돌아왔다. 어머니는 누나를 중국에 남겨 놨다. 지금 얼마나 많은 북한의 어머니들이 이처럼 가슴을 찢는 결심을 하고 있을까.”

김씨는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다 잠들 때면 내일 아침에 누나가 음식을 가지고 나타날 것 같았다”며 “이러다 아버지처럼 배고파 죽거나 아니면 중국으로 누나를 찾아 넘어가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10대 탈북 경위를 설명했다. 김씨는 “나는 중국으로 탈출해 얼마 만에 운이 좋게도 지하의 쉼터를 찾아 미국으로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9년 몽골을 거쳐 한국에 들어와 지금은 대학생인 박연미씨는 “9살때 친구 어머니가 외국 영화를 봤다는 이유로 공개 처형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을 꺼냈다. 박씨는 “먹을 게 없어 13살 때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넘어갔는데 그때 브로커가 나를 공안에 넘기겠다며 성폭행을 하려 해 결국 어머니가 나를 지키기 위해 대신 나서야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별을 보고 자유를 희망하며 고비 사막을 넘어 몽골로 갔다”며 “오늘이 세계인권의 날이라는데 우리가 북한에 변화를 원한다면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탈북 인생사에 한 청중이 일어나 “오늘 한 얘기를 (다른 이들에게도) 계속 해 달라”고 격려했다. 뉴욕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김씨는 “내가 느끼는 자유는 내가 원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그 상상을 이룰 기회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도 “(아침에 일어나면) 여기가 그곳(북한이) 아니어서 항상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토론회 시작 전 국무부 실무진은 40분 이내라고 일정을 귀띔했다. 그러나 행사는 두 젊은이의 인생 얘기에 청중들의 질문이 계속되며 1시간을 넘겼다.

연단에 앉아 두 젊은이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로버트 킹 특사는 “(두 사람의 인생 역정은)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들로 우리가 함께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리노스키 차관보도 “이 젊은이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겪었다”며 “언젠간 북한 주민들은 자유롭게 될 것이고 그건 필연”이라고 했다. 말리노스키 차관보는 토론회가 끝났는데도 나가지 않고 기다렸다가 김씨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며 “우리 계속 연락하자”고 격려했다. 이날 국무부 1층의 강당은 고함도, 구호도, 머리띠도 없었지만 고함과 구호 이상으로 북한의 실상을 전하는 자리였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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