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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흉내낸 초고감도 전자센서 개발…요절한 동료교수에 논문헌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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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거미의 진동 감각기관은 발목 근처에 있다(a). 이를 슬릿 기관(Slit Organ)이라 부르는데 그 구조는 부드러운 패드를 딱딱한 박막(exoskeleton)이 덮고 있는 형태다. 박막에는 신경세포가 연결돼 있다(b). (c)는 이를 모사해 부드러운 폴리머 위에 딱딱한 백금 박막을 올린 뒤 크랙을 만든 연구팀의 나노크랙센서 모습이다. 실제 5㎜ X 10㎜ 크기의 센서(d)를 확대하면(e) 횡방향으로 수많은 크랙이 나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e).

거미는 진동에 민감하다.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이 보내는 진동에 따라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판단한다. 집거미의 경우 통상 80~800㎐의 진동에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각기관은 발목 근처에 있다. 딱딱한 박막에 균열(crack)이 나있는 형태다. 이 균열은 외부 진동에 따라 벌어지거나 좁혀지는데, 그 정도에 따라 신경세포에 진동감각(pallesthesia)이 전달된다.

거미의 감각기관을 모사한 크랙센서의 모습.

거미의 이런 감각기관을 흉내 낸 초고감도 센서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서울대 최만수(기계항공공학부) 교수, 성균관대 김태일(화학공학부) 교수 공동연구팀은 나노(nano, 1㎚=10억 분의 1m) 균열을 이용해 진동ㆍ압력ㆍ음성 등을 기존 센서보다 100~1000배 높은 감도로 측정할 수 있는 센서를 제작했다고 11일 밝혔다.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온라인판에 게재된 논문을 통해서다.

연구팀은 유연 폴리머 기판 위에 백금 박막을 올린 뒤 거미 감각기관처럼 미세한 균열을 만들었다. 이 곳에 전류를 흘리자 균열 부위가 열린 정도에 따라 전기저항이 달라졌다. 균열 부위가 닫혀있을 땐 전기저항이 아주 작았다. 외부 자극에 의해 균열 부위가 벌어졌을 땐 저항이 커졌다. 연구팀은 이런 원리를 이용해 진동 등 미세한 물리적 변위를 측정할 수 있는 전자센서를 만들었다.

연구팀은 “음성인식 센서, 피부 부착형 센서 등의 감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백금을 값싼 구리나 알루미늄으로 대체하고 양산 공정을 개발하면 향후 3년 내 실용화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한편 교신저자인 최만수 교수는 “이번 연구는 (원래) 지난해 7월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고 서갑양 교수가 주도했다”며 “저자들이 논문을 서 교수에게 헌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고 서갑양 교수는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에 재직하며 나노기술을 생체모사공학(biomimetics)에 접목하는 연구를 했다. 딱정벌레 날개의 잠금장치 원리를 이용한 감각센서 등을 개발해 2010년 ‘젊은 과학자상(공학부문)’을 받았다. 앞서 2004년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가 발행하는 잡지인 '테크놀로지 리뷰'가 선정하는 '올해의 젊은 과학자 100인(TR100)'에 뽑히기도 했다. 젊은 나이(사망 당시 41세)에 국제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논문만 180여 편을 쓰는 등 ‘천재 과학자’로 주목 받았지만, 지난해 미 하와이에서 열린 학회 참석도중 사망했다.

김한별 기자 idstar@joongang.co.kr
[사진= 네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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