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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목요일] 영·유아 영어교육 어떻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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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직장맘’ 김모(39·서울 성동구 옥수동)씨는 내년에 여섯 살이 되는 둘째 딸을 유아 대상 영어학원(‘영어유치원’)에 보낼까 고심 중이다. 일반유치원에 다녔던 첫째는 유치원 특활(영어뮤지컬)과 학습지로만 영어를 배웠다. 첫째가 사립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절반이 넘는 반 친구들이 ‘영유(영어유치원)’ 출신인 걸 알게 됐다. 김씨는 “친구들에 비해 영어가 뒤진다는 걸 눈치챈 아이가 낙담하는 걸 보고 어쩔 수 없이 사교육을 시켰다. 이럴 바엔 영어는 일찍 시키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초등 2학년 조현진(8)양은 미국 초등 1·2학년 교과서를 큰 어려움 없이 읽곤 한다. 영어학원을 다닌 적이 없었지만 전업주부인 어머니 박소연(40·서울 강북구 송중동)씨로부터 영어를 배웠다. 박씨는 27개월부터 아이에게 영어 동요를 들려주고 함께 불렀다. 만 3세 이후엔 영어동화를 매일 읽어 줬다.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가 스스로 영어책을 골라 읽게도 했다. 박씨는 “‘영유’ 나온 애들처럼 쓰기까지 잘하는 건 아니지만 나도 아이도 스트레스 없이 행복하게 배워 만족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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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의 고민 중 하나는 영어교육이다. 언제 시작하는 게 좋을지, 학습지·학원·유치원 특활 등 어떤 방식이 나을지 선택이 쉽지 않다. 일반유치원의 군별 추첨제 도입으로 혼란을 겪은 서울 학부모 중엔 “차라리 ‘영유’에 보내겠다”는 이들도 나온다. 반대로 사교육 대신 영어동화 읽기를 중심으로 한 ‘엄마표 영어’에 대한 관심도 많다.

 영어교육의 적기(適期)에 대해선 학계도 ‘정답’이 없다. 지난 6월 육아정책연구소가 유아 영어교육을 다룬 국내 연구물 19편을 분석한 결과 10편은 “일찍 시작할수록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었다. 나머지 9편은 “만 6~7세 이전은 효과가 작다” “모국어 형성을 저해한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찬반 양론의 ‘공통분모’도 있다. 이윤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조기교육의 효과를 인정하는 학자도 ‘자연스럽게 영어에 노출되는 환경’ ‘주 1~2회 학습’을 가정한다”며 “주입식 영어교육은 찬성 측도 우려한다”고 말했다.

 영·유아 영어교육을 학습보다 문화로, 공부 대신 놀이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명신 연세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는 “영어도 한글처럼 율동과 노래로 자연스럽게 배워야 하는데, 그런 교육을 받지 못한 어른 탓에 너무 일찍 학습 위주로 흐른다”고 지적했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영어교육을 시작한 아이를 꼼꼼히 살피라는 것도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영훈 가톨릭대 의대 소아청소년학과 교수는 “익숙하지 않은 언어를 처음 접하는 아이는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복통·두통을 호소하거나 감기에 자주 걸리고 식욕이 떨어진다면 영어 스트레스 탓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서유헌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아이가 싫다고 하거나 이상반응을 발견하면 그런 교육은 일단 중단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학부모·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다. 학부모 만족도는 높은 편이나 부적응 아이들도 종종 나온다. 이윤진 연구위원은 “이들 학원들은 너무 급히, 많이 가르치려 게 문제”라고 말했다. 놀이·율동·활동 중심의 일반유치원에 비해 텍스트 중심 교육이 많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따르면 유아 대상 영어학원들은 대개 수업의 70% 이상을 파닉스(글자·발음을 대응시켜 단어를 배우는 교습법), 듣기, 읽기, 쓰기, 문법에 할애하고 있다. 평균 수업시수는 4시간40분으로, 초등학교 7교시에 해당한다.

 유아 대상 영어학원 강사로 일했던 이모씨는 “수업료가 비싼 만큼 학부모는 빨리, 많이 배우는 걸 선호해 학원도 공부와 수업 중심으로 운영되곤 한다. 굳이 ‘영유’를 보낸다면 놀이 중심으로 운영되는 곳을 고르라”고 권했다.

 다른 방식의 영어교육도 선택 전에 살펴볼 게 적지 않다. 일반유치원은 특별활동으로 영어교육을 제공한다. 유치원에 따라 교재·강사가 천차만별이다. 공개수업을 참관해 교육의 질을 확인하고 정해야 한다.

 학습지 역시 신중히 따져 봐야 한다. “율동·노래로 충분한 ‘워밍업’이 안 된 상태에서 그림과 알파벳을 잇는 선 긋기식 학습은 아이의 흥미를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최지영 삼육대 유아교육과 교수)이다. DVD 등 영상물, 태블릿PC 같은 스마트기기를 통해 영어를 배우게 할 때는 아이를 혼자 둬선 안 된다. 김지영 중앙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보호자가 함께 보면서 내용과 생각을 묻고 답하는 상호작용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영어동화 읽기에 대해선 “꾸준함과 기다림이 중요하다”는 엄마들이 많다. 문지연(36·서울 강남구 청담동)씨의 초등 2년 아들은 최근 시험 삼아 치른 영어학원 레벨 테스트에서 ‘영유’를 나온 학생과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아들은 생후 10개월부터 매일 문씨가 읽어 주는 영어동화를 듣고 자랐다. 문씨는 “아이가 원하지 않을 때 시키는 걸 가장 조심했다. 아이 스스로 ‘내 이름은 영어로 어떻게 쓰느냐’며 궁금해할 때만 철자법·쓰기를 가르쳤다”고 말했다.

 영어동화 읽기도 아이의 성격·기질·발달단계를 감안해야 한다. 서현주 청담러닝 블루스프링스 고문은 “발음이 자신 없어 망설이는 부모도 있지만 원어민 음성의 CD 등을 병행하면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며 “더 중요한 건 엄마·아빠의 음성으로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가 부모와 공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가 좀 더 자라면 도서관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좋다. “비용 절감뿐 아니라 아이가 직접 영어책을 고르면서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명신 연세대 교수)이다.

글=천인성·신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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