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무의미한 반복과 평준화 우리는 왜 항상 실패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두 벌의 스웨터’는 ‘이거 풀어서 저것 짠’ 결과물이다. [사진 안규철]

스웨터의 실을 풀어내 새로운 스웨터를 짠다. 무용한 노동이다. 전시장 벽에 걸려 조명을 받고 있는 ‘두 벌의 스웨터’는 실패한 노동의 상징인가. 모두가 쉬지 않고 일하는데 삶은 왜 더 나아지지 않을까.

 서울 청담동 하이트컬렉션에서 열리는 안규철(59)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장의 개인전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은 실패를 주제 삼은 전시다. 좌대를 맞춰 키를 ‘평준화’한 화분들, 쉬지 않고 돌아가지만 도저히 시간을 읽을 수 없는 한 쌍의 벽시계, 전시 기간 내내 옮겨 쌓기를 반복하는 한 쌍의 붉은 벽돌담 등. 무용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전시장 2개 층은 한 쌍의 비관과 낙관이다. 시계제로의 올 한 해를 보내며 개념미술가는 조용히 묻는다. “우리의 일들은 왜 실패하는가. 목표에 이르지 못하고 물거품처럼 사라진 우리의 선한 의도와 그 일들에 바쳐진 시간은 다 어디로 가는가.”

 전시 제목은 201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웨덴 시인 트란스트뢰메르의 시 ‘작은 잎’에서 가져왔다. 전시 장면과 인터뷰·평론을 수록한 책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워크룸프레스)도 출간됐다. 실패를 보여주겠다는 취지로 꾸며진 이 전시는 실패일까 성공일까. 13일까지. 무료. 02-3219-0271.

권근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