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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으로 평생 모은 돈 기부한 80대 독거노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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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 8일 오전 11시20분쯤 부산 사하구청 나눔캠페인 담당자 최선영(38)씨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80대 독거노인이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기탁하려 한다”는 하단소방서 직원의 전화였다.

 최씨가 택시를 타고 소방서로 달려갔더니 김원찬(85·사진) 할아버지가 3000만원짜리 수표 1장과 100만원짜리 수표 5장 등 3500만원을 내놨다. 그는 “나처럼 어렵게 살아온 사람을 위해 기부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올 들어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느냐’는 생각이 든 김 할아버지는 얼마 안 되는 재산 정리에 나섰고, 이를 불우이웃들에게 기부하기로 했다는 설명이었다. 무작정 예금 3500만원 전액을 찾은 김 할아버지는 어디에 기탁할지 몰라 먼저 소방서를 찾아가 사정을 얘기했고, 이에 소방서 직원이 구청에 이런 소식을 전했다.

 김 할아버지의 뜻을 전해들은 최씨는 할아버지를 우체국에 모셔간 뒤 2000만원을 불우이웃돕기 통장에 입금했다. 김 할아버지는 “나머지 1500만원도 내가 죽거든 성금으로 써달라”며 최씨에게 맡기려고 했다. 최씨는 “공무원은 돈을 맡을 수 없으니 할아버지께서 맛있는 거 사드시며 갖고 계시다가 나중에 또 기부하면 된다”고 설득했다. 김 할아버지는 “그러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최씨는 할아버지를 전철역까지 모셔다 드렸다.

 국가유공자인 김 할아버지는 평생 노점상을 하며 이 돈을 모았다. 그는 6·25 전쟁 당시 총상을 입어 몸 한쪽에 장애가 있다. 이 때문에 결혼도 하지 않고 혈혈단신으로 서울과 강원도를 돌며 아동책 등을 파는 노점을 했다. 살면서 생필품 외에는 돈을 거의 쓰지 않아 3500만원을 모을 수 있었다. 기력이 떨어져 더 이상 노점상을 할 수 없게 되자 지난 1월 따뜻한 부산으로 내려와 정착했다.

 김 할아버지는 돈이 아까워 세들어 사는 집에 난방도 하지 않는다. 외로움을 이기려고 아침 일찍 집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이곳저곳을 구경하거나 동료 노인들과 얘기를 나눈 뒤 저녁 늦게 들어와 잠을 청한다고 한다.

부산=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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