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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박근혜 초심'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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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

박근혜 언어는 절제다. ‘정윤회 문건’ 파동은 그 특성을 잃게 한다. 대통령의 언어는 강하고 격했다. “찌라시에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것은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 표정에선 분노가 포착된다. 그 시선에 싸늘한 비감마저 서린다.

 그것은 본능적인 거부감일 것이다. 그런 반응은 10·26 이후 경험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그 시절 사회 일각에는 아버지 박정희에 대해 매도와 폄하가 있었다. 박 대통령은 거기에 시달렸다. 그 때문에 확인이 안 된 의혹에 대한 반감은 특별나다. 박 대통령은 “솔직히 제가 겁나는 일이 뭐가 있느냐”고 했다. 그 자신감 표출은 격정적이다. 그 자리(7일 청와대)의 새누리당 당직자들은 움찔한다.

 JP(김종필 전 총리)는 예전에 이렇게 회고한 적이 있다. “(5년 단임제에서) 대통령은 임기 2년을 넘길 무렵이면 권좌(權座)의 맛을 알게 된다. 민심 흐름이 어떻게 돌아가든 대통령으로서 결심하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긴다. 그 자신감이 허튼 것이든 바른 것이든.” 정치 9단의 경륜과 혜안에서 나온 진단이다. 박 대통령은 임기 2년을 채우고 있다.

 문고리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논란은 계속된다. 박 대통령은 “(3인 비서관은) 내 곁에 15년간 있었다. 물의를 일으키거나 잘못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신임 표시는 격렬할 정도다. 박근혜의 언어 구사 방식은 거기서도 달라졌다.

 문고리 비서진의 역할 공간은 부속실이다. 부속실은 대통령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그 공간은 음지의 은밀한 영역이다. 햇볕을 받으면 측근의 기능은 손상된다. 그들의 모습이 드러나면 대중의 시선은 미묘해진다. 노출된 문고리는 작은 권력으로 비춰진다.

 그 비서관들의 활동영역은 확장돼 왔다. 박 대통령의 공개 외교 현장에도 그들은 나타난다. 권력 운용의 이례적인 풍경이다. 그런 장면들은 작은 권력의 위세를 강화한다. 그것이 권력의 변함없는 속성이다.

 ‘정윤회 문건 파동’은 중첩돼 있다. 그 밑바닥에 인사 개입과 월권 의혹이 있다. 박 대통령은 일축한다. “(정윤회씨는) 오래전에 내 옆을 떠났고, 연락도 끊긴 사람”이라고 했다. 인사 혼선은 박근혜 정권을 괴롭혀 왔다. 고약한 징크스가 돼 버렸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로부터 국정 과외수업을 받았다. ‘박근혜 초심’은 그것으로 연마됐다. 국방과학연구소(ADD)는 박정희 시대의 상징이다. 그 시대 자주국방 성취의 신화다. 박근혜 자서전(『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은 이렇게 기억한다. “ADD 소장 심문택 박사는 아버지께 인사와 조직, 예산 운영의 자율성을 건의했고 아버지는 흔쾌히 서류에 사인을 하셨다. 그분은 거절하기 힘든 인사 청탁을 받을 때면 그 서류를 보여주며 답을 대신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선거 때 ‘책임 장관제도’를 내걸었다. 그 핵심은 장관의 인사 자율이다. 지금의 인사 현장은 불만 가득하고 시끄럽다. 정윤회씨는 (의혹 제기를) “엄청난 불장난”이라고 했다. 하지만 반박만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책임 장관제가 해법이다. 그것이 비선(秘線) 실세 논란을 잠재우는 길이다. 그것으로 징크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역대 정권의 친인척 비리를 많이 봐서, 동생 지만 부부는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고 했다. 박지만(EG 회장)씨는 거기에 충실하다. 그에게도 국정 아이디어가 들어온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거절한다고 한다. “나를 통하면 무엇이든 역차별을 받는다.”

 동생 멀리하기는 권력 교훈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침은 어설픈 소문을 만든다. 누군가 대통령 주변을 독점했다는 논란이 생긴다. 정윤회씨를 향한 박지만씨의 시각은 단호하고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초심의 표정은 미소다. 그 미소는 어느 순간 보기 힘들어졌다. 대통령이 동생 부부, 조카들과 어울리는 모습은 자연스럽다. 그것은 소통의 면모를 새롭게 해 주는 소재다. 그 어울림은 미소를 재생산한다.

 계영배(戒盈杯)는 절제의 미학이다. 지나침을 경계하는 술잔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지혜가 담겼다. 박 대통령은 그걸로 선물한다. 계영배의 지혜는 박근혜 초심을 작동하게 한다. 대통령의 언어 구사, 신임의 관리, 권력 운용에 그 미학이 적용돼야 한다. 박지만·서향희 부부 관리 문제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꿈을 언급했다. “나라가 잘되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꿈 하나로 살고 있다. 그 목적 외에 나머지는 다 번뇌”라고 했다. 국정 쇄신은 불가피하다. ‘박근혜 초심’은 쇄신의 원동력이다. 초심은 번뇌를 제거한다. 청와대부터 사람 쓰기와 일하는 방식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그것이 꿈을 성취하기 위한 재출발점이다.

박보균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