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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경악할 CIA의 테러 용의자 고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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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2001년 9·11 테러 이후 해외의 비밀 구금시설에서 테러 용의자들에게 가한 고문 실태가 9일(현지시간) 공개됐다. 다이앤 파인스타인 미 상원 정보위원장이 공개한 500여 쪽의 보고서 요약본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고문이 ‘선진 심문기법’이란 이름으로 반복적으로 가해졌다.

 이번에 드러난 CIA의 고문은 유엔 인권헌장을 비롯한 국제인권 규약에 어긋나는 조직적인 인권침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고문에 이용된 구금 시설과 심문 프로그램은 역사의 오점으로 남게 됐다. ‘인권국가 미국’이란 이미지도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백악관·의회·국무부·법무부 등이 진실을 밝히거나 잘못된 행동을 통제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테러와의 전쟁이란 목적을 위해 고문이란 수단을 정당화하면서 인권이란 인류 보편의 가치를 무시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미 행정부는 “고문에 책임이 있는 CIA 및 미 정부 관리들을 기소해야 한다”고 한 벤 에머슨 유엔 대테러·인권 특별보고관의 지적에 귀를 기울여 책임 있는 후속 조치를 내놔야 한다.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은 미국이 용기 있게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을 숨김없이 밝혔다는 점이다. 잘못에 대한 고백과 반성은 미래로 나아가는 힘이 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보고서 공개 후 “CIA의 가혹한 심문 기법은 미국과 미국민의 가치에 반한다”며 “이것이 내가 취임한 직후 고문을 금지한 이유이고, 이런 방법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지속적으로 행사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오바마의 발언은 CIA의 고문 사례가 드러났다고 해서 유엔이 주도해온 글로벌 인권 드라이브가 힘을 잃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고문을 비롯한 인권 문제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는 국가나 집단은 더 이상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신을 정당화하려 하지 말고 이런 고백과 반성의 용기부터 배워야 한다. 인권은 국제사회가 지향해야 할 인류 보편의 가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