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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3000억 세금 추가 부담 … 엎친 데 덮친 석유화학업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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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석유화학 업계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실적악화로 고전 중인데 내년부터 매년 30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추가로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10일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내년부터 석유화학 원재료인 나프타에 대한 세금 환급을 현행 3%에서 1%로 대폭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부족한 세수 마련을 위해서다. 정유회사가 원유를 수입해 들여오면 3%의 관세를 낸다. 반면 원유를 정제해 만든 나프타를 수입하면 무관세(0%)다. 정부는 국내 석유화학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지난 1996년부터 나프타를 수출할 경우 원유 수입 때 받았던 관세 3%를 되돌려줘왔다. 그런데 내년부터 이게 1%로 줄어들면서 3000억원의 세금을 더 내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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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세수확보 차원에서 세금 환급 축소를 검토하고 나서자 업계는 크게 반발했다. 유가하락에 따른 정제마진 감소로 지난 3분기 기준 국내 정유회사 4곳의 누적 영업손실액이 9700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실적이 악화된 상황에서 “3000억원의 세금 부과는 적자 확대와 시장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석유협회가 조사한 가격 영향력 조사에 따르면 세금 부과 시 화학제품 값은 0.3% 올라갈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는 “정유업체들의 세금 부담 증가→한국산 나프타 가격 상승→한국 석유화학 제품 가격 상승→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석유화학협회 역시 “세금 부담에 따른 관련 산업의 영업이익 감소분은 3622억원에 달할 전망”이라며 “이 가운데 63%가 영세한 중소기업의 부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가 파는 석유화학 제품의 85%를 사들이고 있는 중국이 자급률이 빠르게 올리고 있는 것도 우려스럽다. 석유협회에 따르면 2010년만 해도 중국에서 자급률이 90%를 넘어선 석유화학 제품은 2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3년 3개, 내년엔 9개로 늘어나 필요한 석유화학 제품의 52%를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생산하게 될 전망이다.

 중국이 자급률을 높이면 우리 기업들에겐 치명타가 된다. 지난 9월 SK이노베이션은 폴리에스터 섬유의 원료가 되는 고순도 테레프탈산(PTA) 생산회사인 SK유화를 매각했다. 삼성그룹 역시 삼성석유화학이 PTA 공장을 돌리면 돌릴수록 적자를 내자, 지난 4월 삼성종합화학에 흡수합병시켰다. 과감한 합병에도 불구하고 중국 수출길이 막히면서 삼성은 아예 삼성종합화학을 한화케미칼에 팔고 사실상 화학사업을 정리했다.

 복병은 또 있다. 업계는 “최근 체결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국내 시장마저 중국에 잠식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내 정유회사들은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 페트병 등의 원료로 쓰이는 파라자일렌(PX)에 대한 ‘조 단위 투자’를 했다. 하지만 이번 FTA에서 파라자일렌은 아예 제외되면서 업계는 시름에 빠졌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파라자일렌 사업은 그마나 중국의 자급률이 낮아 ‘기회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FTA에서 제외된 반면, 중국 석유화학 제품은 대부분 무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게 돼 국내 시장이 잠식될 위기에 놓였다”고 토로했다.

 북미지역에서 시작한 셰일혁명도 국내 화학기업들에겐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원유와 함께 쏟아져 나오는 셰일가스를 버리지 않고 이를 활용해 ‘가스 화학’을, 셰일오일로 ‘석유화학’ 제품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미국 기업의 가격경쟁력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미에서 생산된 석유화학제품은 t당 700~800달러 수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것보다 3배 이상 저렴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홍성일 금융조세팀장은 “경기둔화에 따른 수요부진, 유가하락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정유사 실적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는 산업 보호를 위해 현행대로 세금 환급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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