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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 물질 검사 미비" 담수화 시설 개점 휴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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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부산 기장 주민에게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조성된 해수 담수화 시설. [사진 부산시 상수도본부]

부산시는 지난 8월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 봉대산 자락의 바닷가 4만5845㎡에 해수 담수화 시설을 완공했다. 바닷물에 포함된 염분과 불순물을 없앤 뒤 미네랄 등 필수 영양소를 첨가해 식수로 공급하는 국내 최대의 해수 담수화 시설이다.

 이 시설은 하루 4만5000t의 수돗물을 생산해 기장군 주민 5만여 가구에 공급할 수 있다. 국비 823억원과 시비 425억원에 두산중공업이 706억원을 투자하는 등 총 1954억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이달 중 식수를 공급하려던 부산시 계획이 무산됐다. 기장 주민들이 정수된 물에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sH, Tritium)가 포함돼 있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식수 공급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 시설은 대변항에서 바다 쪽으로 400m 떨어지고 고리원전에서 12㎞가량 떨어진 수심 10m에서 원수인 바닷물을 채취한다. 그런데 지난달 환경과자치연구소 등 환경단체가 고리원전 주변 해조류에서 방사성 물질인 세슘·요오드와 함께 삼중수소가 검출됐다고 발표하면서 주민이 반대하고 나섰다. 해조류에서의 방사성 물질 검출 논란이 해수 담수화 시설로 옮겨진 셈이다.

 해수 담수화 물공급 반대대책위 김민정(40·주부) 대표는 “현재로선 수돗물 속에 삼중수소가 있는지 없는지 알 길이 없는 상황”이라며 “삼중수소로부터의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마당에 불안해서 어떻게 그 물을 먹겠느냐”고 말했다. 대책위에는 주부들을 중심으로 현재 370여 명이 가입해 활동 중이다.

반대대책위는 “방사성 물질에 대한 안정성이 명확히 확보되지 않으면 물 공급을 반대할 수밖에 없다”며 장기 투쟁을 예고했다. 대책위는 해수 담수화 물의 위험성을 알리는 전단지를 돌리고 주민 설명회도 열 예정이다.

 기장군도 이에 가세했다. 주민 여론에 따라 지난 2일 “원전 인근의 방사능 오염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에서 주민의 생명줄인 먹는 물까지 위협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물 공급 중단을 부산시에 요구했다. 주민을 설득하지 못하면 해수 담수화 시설이 무용지물이 될 처지에 놓인 것이다.

 하지만 이 시설을 건립한 부산시 상수도본부는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삼중수소가 자연 상태의 바다에서도 0.1~0.3㏃/L 존재하고, 물을 2L씩 4만 년은 먹어야 병원에서 엑스레이(X-Ray) 한 번 찍는 정도의 방사능에 노출된다는 게 상수도본부의 설명이다. 0.1~0.3㏃/L은 세계보건기구(WHO)의 음용수 기준 1만㏃/L와 캐나다의 7000㏃/L에도 턱없이 못 미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고리원전 주변 바닷물에는 우려할 만큼의 삼중수소가 들어있지 않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상수도본부에 삼중수소 측정 장비가 없어 검출 여부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중수소는 263종의 시 수돗물 감시 항목에도 들어 있지 않다.

상수도본부는 결국 식수 공급을 내년 상반기로 미루기로 했다. 주민 불안을 없애기 위해 외국에서 장비를 들여와 불검출이 확인된 뒤 공급할 계획이다. 장비 도입에는 1~2개월 걸릴 것으로 알려졌다.

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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