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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시선 신경 쓰는 한국? 인정 넘치는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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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사미르 다마니가 그린 서울 광화문 광장(왼쪽)과 청계천(오른쪽) 풍경. [사진 서울도서관]
지난달 30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만난 만화가 사미르 다마니가 자신의 그림 수첩을 보여주고 있다.

A5용지 크기의 수첩은 ‘서울의 일상’을 그린 그림으로 빼곡했다. 프랑스 만화가 사미르 다마니(33)의 수첩이다. 그는 지난해와 올해 총 5개월간 서울에 머무르며 이런 수첩을 4권이나 채웠다. 지하철·버스를 타고 서울의 중심가·주택가·뒷골목을 누비며 그림을 그린 것이다. 최근 이 그림이 묶여 『사미르, 낯선 서울을 그리다』(서랍의 날씨)라는 책으로 나왔다. 그림 중 일부는 지난달 서울도서관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다마니가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프랑스 앙굴렘에 있는 유럽고등이미지학교(<00C9>ESI)에서 만화를 배울 때다. 당시 한국인 유학생들과 어울리며 떡볶이 등 한국 음식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지난해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관한 해외 만화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당선된 것을 계기로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올해 주한프랑스문화원 프로젝트에 당선되면서 두 번째로 한국을 방문했다. 서울의 거리를 정확하게 묘사하고 싶었던 그는 앙굴렘에서 한글을 배우기도 했다.

 처음에 그가 마주한 서울 시민들은 무표정하고 차가운 인상이었다고 한다. 실제 앙굴렘에서 사귄 한국인 친구는 ‘한국이 남의 시선을 위해 사는 나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곧 그의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인상적인 풍경을 만나면 같은 자리에서 1시간 이상 머무르며 그림을 그렸다. 지나가는 시민들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첫눈에는 경계심도 강하고 차갑게 보이지만 한번 웃어보이고 나면 수줍음과 인정이 많은 사람들이더라고요.”

이렇게 정성들여 그린 그의 그림체는 한국의 수묵화 같은 느낌을 풍겨서 친근하기도 하다. 다마니는 그림 속에 자기 자신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이방인이지만 한국에 관심이 많다는 걸 나타내고자 빨간색 ‘말뚝이’ 탈을 쓴 남성으로 그렸다.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해 여러 종류의 탈을 둘러본 뒤 직접 ‘말뚝이’를 선택했다.

 그는 서울의 지하철과 길거리 포장마차를 가장 인상적인 곳으로 꼽았다. 서울의 지하철은 지하상가가 붙어 있기 때문에 삶의 면면을 관찰하기에 좋았다. 프랑스에는 길거리 음식 문화가 없기 때문에 포장마차는 그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는 “제 그림을 통해서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다마니는 깊이 있는 만화를 그릴 생각으로 프랑스 리옹대에서 고고학을 먼저 공부했다. <00C9>ESI에 진학해선 만화뿐만 아니라 사진·영화·조소도 배웠다. 그가 만화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질은 ‘호기심이 많은가’다. 그는 자신을 만화가가 아닌 탐험가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작업도 매우 즐거웠다고 했다.

 그는 후속 작업으로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한국인 유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만화로 그릴 예정이다. 이 만화에 등장하는 한국인 주인공에게는 ‘각시탈’을 씌울 계획이다. 그는 ‘정체성’에 관심이 많다. 다마니 자신이 알제리에서 프랑스로 이주해온 부모 밑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다문화국가인 프랑스에선 남의 시선을 신경 쓰기 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겪었던 고민을 한국과도 공유하고 싶어요.”

글·사진=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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