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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말로 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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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

(중략)

내 팔과 다리를 꺾어

- 최승자(1952~ )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중에서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시들은 추상적이고 모호한 단어들로 차있었다. 학창 시절 내 문학세계는 이런 교과서 시를 막연하게 동경하는 선에 머물러 있었다. 고교 2학년 어느 날, 친구 하나가 최승자 시인의 이 시를 내게 불쑥 내밀었다. 충격이었다. 내면의 고통이 살을 뚫고 터져 나온 듯 아프면서도 시원했다. 그 전까지 알던 시와 너무나 다른 낯섦의 자각이 통렬해서 한 자 한 자 씹어 먹었다. 내가 살아가면서 세상과 사람을 대할 때 견지해야 할 기본 태도가 결정되었다. 모호한 관념에서 벗어날 것, 현실로 튀어나와서 구체적일 것, 진실에 들어갈 때는 몸으로 느끼고 받아들일 것.

 7년 만에 내놓은 새 앨범 ‘겨울, 그리고 봄’에서 나는 노래했다. “너의 손에 아무 것 없으니/너의 작은 몸은 깃털처럼 가볍겠구나(…)/어느 길을 가든 너의 길/어느 곳에 있던 너의 집.”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새로 갖게 해준 최승자의 시를 나는 요즘도 웅얼웅얼 옹아리처럼 입에 달고 산다. 말로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