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랑채에서 어엿한 본채로…한옥의 변신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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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전에 지어진 양씨의 시골집은 이제 아래채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는 이마저 잃게 될까 조바심 난 마음에 얼마 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결정했다.

그는 어머니의 품을 찾아 고향집에 들릴 때마다 요즘엔 집 구석구석 자신의 손길을 더하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낸다.

스무 가구 정도가 모여 사는 작은 시골 마을. 충남 당진에 있는 이 마을은 ‘버스랭이’라는 옛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양씨는 그 이름을 잊지 않고 자주 웅얼거렸다.

그리하면 고향의 추억과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아지랑이처럼 마음 한켠에 피어올랐다. 도시 생활이 지칠 때마다, 어머니의 품을 찼듯 들러보는 고향집이 그는 마냥 좋기만 했다.

한옥 목수에게 의뢰한 옛집 리모델링

그러던 차, 올 초 마을에서 양 씨의 마음을 사로잡은 일이 생겼다. 2년 넘게 폐허로 방치되어 있던 근처 빈집이 근사한 한옥집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외지인이 한옥 목수를 초빙해 수리한 그 집은 푸른 잔디를 배경으로 고매한 지붕선과 현관, 마루 등으로 양 씨 마음을 흔들었다.

80년은 족히 된 그의 시골집도 재건축을 고민하고 있던 터. 양 씨는 옛집을 보존하고 싶은 마음에 어머니를 설득했다. 반듯하고 편리한 양옥집을 원했던 어머니도 이내 아들의 마음을 이해해 주셨지만, 문제는 목수였다.

오대산에 있는 상원사에 머물며 10년 넘게 전통사찰을 보수했던 목수에게 시골집 리모델링은 번거롭고 귀찮을 수 있는 작업이었다. 옆집 주인장과 함께 열흘 넘게 조른 끝에, 목수는 그의 간절함에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바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집 앞에 1백 년은 족히 넘은 큰 배롱나무가 있어 마을사람들은 그의 집을 ‘배롱나무집’이라 불렸다. 너스랭이 배롱나무집의 변신은 마을 전체의 관심거리기도 했다.

최대한 본래 집의 구조를 살린 개조

원래 양 씨의 시골집은 위채, 아래채가 나뉘어 있고 안마당이 근사한 전통 가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래채만 남고 위채가 있던 자리는 나무와 풀이 대신하고 있다.

“30년 전쯤인가, 위채가 너무 낡아서 뭔가 조치를 취해야 했는데 그 당시만 해도 리모델링 개념이 없었거든요. 시골에서는 다들 시멘트집으로 바꿔 짓는 추세들이어서 저희도 일단 위채를 헐고 행랑채인 아래채로 이사 온 거죠.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깝고 후회되는 일이에요.”

아래채라도 사수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는 기존의 구조를 되도록 손대지 않는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잡았다. 바닥 높이가 달라 동선이 불편한 부분만 개조하고 부족한 단열성을 보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우선 벽체를 헐어내고 썩은 기둥 밑단의 교체가 시작되었다. 곡선의 미를 드러내는 상부기둥은 그대로 두고 하단만 국산 소나무를 치목해 전통방식으로 짜맞춤했다. 목수는 원래 우리나라 나무를 쓴 한옥이므로, 요즘 흔히 쓰는 미송보다는 되도록 우리 소나무로 작업하는 것이 좋다고 귀띔해 주었다. 비용은 더 많이 들었지만, 양 씨는 기꺼이 이를 감수했다. 여기엔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 동안 틈틈이 보수를 한다고 기둥, 서까래 등 보이는 나무는 죄다 페인트칠을 했던 것. 나무가 숨을 쉴 수 없게 만들고 본연의 결과 색을 감추게 했던 페인트는, 벗겨내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다. 인부들이 꼬박 2~3일을 붙어 작업하는 것을 보면서 양 씨는 나무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구들과 심벽으로 되살아난 흙집

기둥 보강 공사가 끝난 후 칸막이 하부는 벽돌로 쌓았다. 바닥은 시멘트에 보일러가 두 겹이나 깔려 있었다. 보수를 하면서 뜯지 않고 그 위에 그냥 시공해 왔기 때문이다. 이를 모두 들어낸 후 구들을 재시공하고, 벽체 역시 황토흙으로 심벽을 치는 전통 방식을 따랐다. 수수대와 대나무 대신 가는 각목을 심지 삼아 짚과 섞은 흙을 치대서 완성했다. 구들과 흙벽이 다시 살아나면서 집은 그제야 제 옷을 입은 듯했다.

다음은 지붕 공사. 양 씨는 전통 사찰이나 큰 한옥에 쓰는 동기와를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목수의 권유에 따라 한식기와로 선택했다. 바랜 듯 은은한 기와색이 정갈한 집의 풍채와 잘 어울린다. 지붕은 염에 의한 부식이 1년 정도 진행된 후에 무광 코팅으로 마감할 생각이다.

거실에서는 뒷마루로 바로 드나들 수 있는 문과 큰 창이 나 있다. 마루는 양 씨가 특히 아끼는 공간으로, 안뜰에서 집과 역사를 같이 했던 큰 참죽나무로 만들어졌다. 전통 방식 그대로 우물마루로 시공했고, 배롱나무가 훤히 보이는 자리는 이층 마루까지 올려 난간을 둘러두었다. 찾아오는 이가 있으면 이 곳에 기대 앉아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는 장소가 되길 기대한다.

편리한 동선과 전통 인테리어 조합

실내 구조는 단출하다. ㄱ자 집은 긴 방향으로 어머니가 머무시는 안방과 거실을 두고 나머지 방향에 주방과 찜질방, 욕실을 연결했다.

원래 부엌이 있던 자리는 구들을 새로 놓아 찜질방을 만들었는데, 상단에 세로로 가지런한 나무 문살을 그대로 살려냈다. 이 문살에 유리를 덧대 채광을 좋게 하고, 방문도 밝은 창호지를 입혀 실내는 어둡지 않다. 찜질방에는 이불과 세간 등을 두는 붙박이장을 만들어줬고, 바로 옆으로 욕실을 배치했다. 현대식 욕실에 창호지로 만든 작은 나무문이 달려 있어 옛집의 온기를 살려 주고 있다.

주방 역시 현대식으로 꾸몄다. 일자 싱크대 공간과 맞은 편 수납 공간을 넉넉히 두어 어머니가 생활하시는 데 불편함을 없게 했다. 바로 열려 있는 거실 역시 칸막이된 공간들을 터서 크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덕분에 중간 중간 나무 기둥이 그대로 남아 있어 여기 잠시 기대어 겉잠을 잘 만도 하다.

내부 벽은 흙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수수를 갈은 고운 분말로 죽을 쓰고 우뭇가사리를 삶은 물을 고운 황토분말에 섞어 색을 내었다. 방은 한지를 덧발라 밝고 은은하게 연출했다. 바닥 역시 콩기름을 한번 삶은 다음, 콩을 간 되직한 물을 섞어 붓으로 발랐다. 여기에 한지장판으로 마감해 전통미를 물씬 풍기도록 신경썼다.

단열을 최대한 고려한 벽과 창호

양 씨가 집을 고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바로 단열이다. 여느 한옥집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위풍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난방비를 절감하며 효과적으로 단열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했다. 게다가 원래 물이 많은 땅이라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적절하게 차단해야 집의 수명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우선 집 전체에 구들을 새로 깔고 그 위에 보일러 배관을 두어 두 가지 방식의 난방을 혼용하도록 했다. 또한 구들에 불을 때면 굴뚝 뿐 아니라 벽의 하단에 작은 구멍으로도 수증기가 새어나와 바닥 습기가 나무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했다.

어머니가 주무시는 안방은 벽 두께부터 여느 공간과 다르다. 같은 흙벽이지만 내부로 단열재와 석고보드를 한번 씩 덧대어 겨울철 위풍을 확실하게 막아 준다. 창호 역시 모두 이중창으로 설치해 만반을 기했다. 방과 외부가 직접 만나는 부분은 외부에 덧창까지 달고, 이중문은 외부는 유리, 내부는 창호지로 마감해 찬 기운을 막아 준다.

안뜰을 준비하며 집을 기억하는 마음

공사는 총 80일 정도 진행되었다. 양 씨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시골집을 찾아 집이 변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두기도 하고, 직접 돌을 날라 축대를 쌓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집의 나이만큼 커버린 앞마당의 소나무들을 전지하고, 마당까지 내려온 대나무들도 시원하게 쳐냈다.

야생백작약, 라일락 등이 자라는 아름다운 안뜰이지만, 비만 오면 흙이 쓸러내리는 것이 아쉬워 마사토를 가져다 한참을 북돋아 주었다. 동생과 함께 캔터키글라스 잔디씨를 뿌리고, 다가올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

“십여 년이 지나면 아이들도 다 클테고 이 곳에 내려와 살아도 좋겠죠? 우리 가족을 무조건 반겨주는 고향집이 있다는 것이 타향살이에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버스랭이 배롱나무집은 저의 노스탤지어와도 같은 곳이에요.”

▷ 리모델링 궁금증

한옥 철거하는 현장을 통해 자재 얻기

전통 한옥에 쓰인 목재는 오랜 세월을 견디면서 변형을 마쳤기 때문에 형태와 고전미를 갖추고 있다. 새로운 한옥을 짓거나 리모델링을 할 때 이 고재를 적용하면 옛집 분위기를 내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나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 또한 매우 비싸다. 결국 전통 한옥은 아니더라도 옛 살림집이라도 철거하는 현장이 있으면 그 곳에서 고재를 구하는 방법도 있다. 초가가 아닌 기와를 올렸던 건물이라면 제법 괜찮은 목재를 구할 수도 있다.

철거 후 목재를 수거해 오는 비용은 얼마나 들까? 한옥의 주인에게 목재값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단지 철거 후 청소비 조로 20만~30만원 정도만 주면 된다. 문제는 인건비다. 짜맞춤 된 목재를 최대한 흠집 없이 분리하기 위해서는 전문 한옥 목수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현장의 작업 인부들도 2~3명 있어야 하니 인건비만 1백만원 이상 든다고 봐야 한다. 또한 보관할 장소까지 이동경비도 든다.

그러니 철거할 집을 사전에 확실하게 점검해 돈 낭비를 말아야 한다. 기둥 근처 시멘트 보수 상황을 살펴 목재가 어느 부분까지 썩어들었는지 살피고, 이왕이면 석회로 보수한 집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목재 역시 페인트칠 되어 있으면 보수하는데 2~3배의 비용이 든다는 것을 명심하자.

조인스 랜드· 월간 전원속의 내집 (취재 이세정 기자, 사진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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