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승연의 한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김승연(62) 한화그룹 회장이 돌아왔다. 2007년 이른바 ‘보복 폭행’사건으로 대표이사를 사임했다가 이듬해 복귀한 이후 두 번째다. 경영 복귀 때마다 김 회장은 대형 인수합병(M&A)이라는 카드로 시장에 존재감을 알려 왔다. 비록 불발에 그쳤지만 2008년엔 ‘외환위기 이후 최대어’라는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시도했고 이번엔 ‘부동의 재계 1위’인 삼성그룹의 화학·방위산업 계열사 인수다.

 다만 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그룹을 지탱하고 있는 굵직한 사업이 위기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화가 신성장동력으로 투자를 집중하고 있는 태양광사업은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 건설사업은 그룹의 재무구조를 갉아먹고 있다.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 인수를 위해 2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마련하는 것도 과제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태양광사업이다. 지금까지 투자한 금액은 3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한화케미칼 태양광 부문은 2분기 매출 5016억원, 영업이익 14억원에 그쳤다. 그나마도 3분기 들어 2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업계 관계자는 “유가 급락 추세가 이어진다면 태양광발전 수요가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이 태양광사업을 접고 LG화학 역시 투자를 포기하기로 한 것도 수조원을 투자하고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한화에 대한 우려를 높이고 있다.

 건설사업도 꼬여 있다. 한화건설은 2011년 2월 사우디아라비아 얀부 지역에서 230㎿급 발전·담수설비를 10억 달러에 수주했다. 계획대로라면 이달 말 준공돼야 하지만 견적·설계 오류에다 출력량 미달로 4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결국 대주주인 ㈜한화가 한화생명 지분을 담보로 4000억원을 증자해야 했다. 해외 수주 사상 최대 규모(77억5000만 달러)인 이라크 비스마야 프로젝트도 내부에서 ‘경보 주의보’가 내려진 상태다. 비스마야 프로젝트는 바그다드 동남부 20㎞ 지역에 10만 가구의 신도시를 짓는 공사다. 해외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금이야 순조롭다고 하지만 정정 불안이 생기면 수천억원대 손실이 불가피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형 M&A와 관련해 한화엔 ‘트라우마’가 있다.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 때 일이다. 대우조선 노조의 반대로 한화는 실사조차 하지 못하고 입찰서를 냈다. 더욱이 6조5000억원에 인수 계약을 맺고 보증금 3225억원을 냈으나 3개월 만에 인수를 포기했다. 이후 산업은행을 상대로 소송까지 냈지만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한화가 삼성 화학·방산 계열사를 인수한다고 발표한 직후 이들 회사 직원은 노조 설립신고서를 냈다. 복리후생비용을 빼고도 연 2500만원에 이르는 급여 차와 구조조정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김 회장은 지난 3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삼성 직원들의 반발에 대해 “그것은 그 집 사정”이라고 일축했다. 이 때문에 내년 6월로 예정돼 있는 인수시점까지 현장 실사, 협상 등이 평탄치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 회장은 1981년 취임 이래 굵직한 M&A를 통해 그룹의 덩치를 키워 왔다. <그래픽 참조> 그 대상은 한양화학·명성콘도 등 대개는 부실기업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삼성 계열사를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삼성의 임직원들이 허탈감을 가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김 회장이 복귀작으로 삼성과 M&A를 발표했지만 상대방에 대한 포용력은 부족한 듯하다”며 “이질적인 기업문화를 극복해야 성공적인 M&A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토탈이 한화에너지와 시너지효과를 일으킬 것이란 예측도 있지만 국내 정유 4사들이 ‘안방시장’에서는 주유소 사업으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정유사업 진출도 돈이 되질 않는다.

 인수자금 마련도 난제다. 한화는 대우조선 인수 당시 “한화생명 매각, 한화갤러리아 지분 매각, (본사가 있는) 서울 장교동 빌딩과 소공동 빌딩을 매각해 부족자금 2조원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서를 제시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중국의 약진과 유가 하락 등으로 화학 업황이 최악인 게 걸림돌”이라 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경영 전면에 나설 처지가 못 된다. 김 회장은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1억원과 사회봉사명령 300시간의 형을 확정받았다. 이 때문에 김 회장은 ㈜한화를 비롯해 한화케미칼 등 7개 계열사 대표이사직을 내려놨다. 총포·도검·화약류 단속법상으로도 유죄 판결을 받으면 관련 회사 임원 등재를 할 수 없어 김 회장은 대주주 지위만 인정될 뿐이다.

김현예·이상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