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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지켜보니 인문학 강한 CEO가 회사 잘 키워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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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호 21면

“사진으로 보던 모습보다 훨씬 미인이다”고 했더니 배 대표가 “다 변장술 덕분이다”고 대답했다. 최정동 기자

‘저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국내외 석학 27명이 총출동하는 행사가 다가오고 있다. 문정희 교수, 김홍신 교수, 데니스 홍 교수, 혜민 스님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자리다. 대한민국 VVIP 100명, 세계적인 니체·사마천 전문가도 온다. 2015년 1월 14일 ‘서울인문포럼’에서다. 신영복 교수가 친필 서체로 행사 로고를 만들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개회 축사와 만찬 환영사를 한다.

인문학 포럼 이끄는‘보험업계의 돈키호테’ 배양숙 대표

행사비 전액을 배양숙(50) ‘수요포럼 인문의 숲’ 대표가 냈다.

배 대표는 중3 때 집안이 망했다. 꿈을 접고 부산여상에 진학했다. 타이핑 아르바이트로 동생들 학비를 댔다. 졸업 후 그는 ‘삼성우먼’이 됐고, 자산관리 재무설계 전문가로서 보험업계의 아이콘이 됐다. 이 분야 톱10 전문가다. 삼성 FC명예상무인 그에 대해 궁금한게 많아 배 대표를 3일 중앙일보 7층 유민라운지에서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보험의 여왕’‘재무 주치의’‘연구 대상’ 등 별명이 많은데.
“저는 ‘연구 대상’이다. 업계에서 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어서 생긴 별명이다. 사비로 4년 전 ‘수요포럼 인문의 숲’이라는 1년 과정 인문학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서울인문포럼’에는 3억5000만원이 들어간다. ‘힘들게 번 돈을 왜 그런데 펑펑 쓰느냐’ ‘돈 자랑 하느냐’는 우려성·비난성 이야기도 듣는다.
스무 살 때부터 『명심보감』을 여러 번 읽었다. 마음에 담고 있는 구절은 ‘사향은 스스로의 향을 지녔으니 굳이 바람이 불지 않아도 향이 퍼진다’는 뜻의 ‘유사자연향(有麝自然香)이니 하필당풍립(何必當風立)이라’이다.”

-현대어로 번역한다면, ‘마음과 재주를 닦다 보면 자기 홍보를 굳이 하지 않아도 나를 알아주는 이가 나를 찾아온다’는 뜻이다.
“인문 소양이 있으면 오늘과 미래의 지도자들이 ‘바른 결정’을 하는 게 쉽다. 20여 년 동안 기업인들을 접하면서 관찰해 보니 인문학이 강한 분들이 더 크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의 결론처럼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신과 마음과 몸에 인문학이 녹아 들어야 한다. 문사철이 쌓여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차이가 크다. 제가 보니까 사람은 언젠가 새로운 도약을 위해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결국 인문학적 소양이다. 인문학이란 일과성 열풍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차곡차곡 쌓아가야 하는 것이다. 또 인문학은 화학비료가 아니라 사람과 환경 모두에게 좋은 거름 같은 것이다.”

-어떤 인문학 체험을 했는가.
“제가 하는 일은 사실 굉장히 힘들다. 남몰래 흐느껴야 할 때도 있다. 2009년 ‘서울대 미래지도자 인문학과정’에 다닐 때 서울대 교정을 걸으며 불현듯 깨달았다. 그 머리 좋고 뛰어난 세계사적 인물들도 크고 작은 고통을 이겨냈는데 하물며 저 같은 사람에게는 고통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온몸을 짓누르는 짐이 갑자기 가벼워지는 것을 체험했다.”

-성공의 비결을 공식으로 만든다면.
“지속 가능한 노력과 사람에 대한 배려와, 함께 좋아지려고 애를 쓰는 게 합쳐진 결과다. 세 가지가 모이면 빅뱅이 일어난다.”
최고경영자(CEO)는 2세 고민이 많다. 자식 농사를 잘 지어 아이비리그 대학을 졸업했으나 아직은 철부지인 데다가 인생의 지혜가 없어서 창업주들은 고민이 많다. 한두 분의 문제가 아니다. 거의 국가적·사회적인 문제다. 기술적인 것, 경영에 필요한 것을 가르쳐 주는 데는 많다. 사람 보는 눈, 사회 공헌하는 법, 선배와 대화하는 법, 스토리텔링을 사업에 접목하는 법 등 실질적인 지혜가 아직은 부족하기에 수요포럼이라는 일종의 ‘지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수요포럼에서 기억에 남는 보람은.
“포럼은 참가비 1500만원 정도의 가치는 있지만 무료다. 포럼 졸업생 중 어떤 분은 매출 5000억원까지 갔다가 파산 지경에 이르게 됐다.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셨으나 포럼이 계기가 되어 다시 일어섰다. 그분은 ‘칠흑 같은 하늘에서 실이 하나 내려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이 세상에서 아직 나를 찾는 사람이 있구나’는 생각이 들어 포럼에 참석했다. 포럼에서 “당신은 ‘질문하는 인간’인가 ‘대답하는 인간’인가”라는 화두를 듣고 화두를 풀기 위해 애쓰다 보니 다시 일어섰다.”

-다 때려치우고 싶은 유혹도 있었을 텐데.
“그런 유혹을 이기게 하는 것은 초심(初心)이다. 저의 초심을 요약하면 이거다. ‘지도자들이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도와드리면, 고용을 유지하고 또 늘릴 수 있다. 500명을 책임지는 지도자라면 결정이 잘못되면 500명의 생계가 위협받게 된다. 또 결정이 잘 되면 5000명을 먹여 살릴 수 있게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다. 내가 그 일을 하겠다’.”

-서울인문포럼의 정체는 뭔가.
“비영리 사업이다. 총 700명이 참가할 이번 행사는 400명 CEO들에겐 점심·저녁 밥값 20만원을 받는다. 우리 미래를 책임질 200명 청년 기업가·리더는 무료다. 아직 250명 정도 참석인원이 남아 있다.”

-이번 행사를 위해 세계적인 석학들을 섭외하러 다녔는데….
“해외 석학들의 따뜻함과 겸손함에 놀랐다. ‘정말 훌륭한 일을 한다. 어떻게 개인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느냐’며 밥도 사주셨다.”

-여타 인문학 행사도 많은데 차별성이 있다면.
“인문학이 테이크오프(take-off)는 했으나 문제점도 상당수 발견된다. 한국 인문학은 지금 ‘편식을 하고 있다’ ‘깊이가 없다’는 소리가 들린다. 또 인문학은 지적 만족을 넘어 자기가 하는 일에 도움이 돼야 하는데 아직 그 연결고리를 못 찾고 있다. 문학·사학·철학 간의 불균형도 있다. 이번 행사는 이런 문제에 대한 솔루션으로 기획됐다.”

-인터뷰 마지막 강조점은.
“고도 성장 과정에서 우리는 사람답게 사는 법을 잃어버렸다. 지식은 과잉이나 진정한 지혜는 희소하다. 사람 냄새가 그립지만, 공허한 기계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사람을 이롭게 해야 하는데 역부족이라 우리는 오히려 사람을 외롭게 만들고 있다. 대화를 해야 하는데 뒤통수 맞지 않으려고, 또 혹시 손해 보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한마디 한마디 눈치작전을 벌인다.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고 싶어도 사업 파트너는 많아도 친구가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 3만 달러를 넘어 7만 달러가 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 언젠가는 서울인문포럼이 대한민국의 다보스포럼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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