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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더 지어달라" 청송 시골마을 역발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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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우리 마을에 교도소를 더 지어달라.”

 경북의 한 시골 마을 주민들이 다섯 번째 교도소를 유치하겠다고 나섰다. 사과와 고추 농사를 짓고 사는 인구 6800여 명의 경북 청송군 진보면 주민들 얘기다. 진보면 광덕2리에는 이미 2010년 8월부터 2500여 명의 수형자가 있는 경북 북부 제1, 제2, 제3 교도소와 경북직업훈련교도소 등 4개의 교도소가 300m~1㎞ 간격을 두고 들어서 있다.

 진보면 주민들은 4일 “오는 8일 25개 리 이장과 24개 주민단체 대표가 참여하는 ‘청송 교정시설 유치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발족 후 곧바로 주민 서명을 받아 법무부에 교도소 유치 신청서를 낼 예정이다. 경남 거창 법조타운 등 주민들 반대로 교정시설 건립 계획이 표류하고 있는 곳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는 혐오시설을 유치할 수 없다’는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 현상이 적어도 진보면 주민에겐 통하지 않는 얘기다.

 진보면이 이처럼 교도소 유치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교도소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피부로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영숙(46·여) 광덕2리 이장은 “그동안 교도소 인근에 살아오면서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됐지 피해를 본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진보면의 한 과일 판매상은 “교도소 면회객이나 교도소에 볼일을 보러 온 사람들이 과일을 사가는 등 장사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주민들이 수년간 교도소와 함께 지내면서 교도소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사라진 점도 다섯 번째 교도소 유치에 발벗고 나서게 된 배경으로 꼽힌다. 권재열(57) 진보면 부면장은 “570여 명의 교도소 직원과 가족이 진보면에 함께 거주하다 보니 주변 마을보다 훨씬 젊고 활기찬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덕분에 원룸이나 빌라도 늘고 학교도 잘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진보면은 여느 시골 마을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변변한 공장 하나 없지만 도로가 잘 포장돼 있고 330㎡(약 100평) 규모의 수퍼마켓도 3곳이나 있다. 빌라와 아파트 9곳에 음식점은 50곳이 넘는다. 250여 명이 다니는 초등학교 한 곳에 2개 중학교(196명)와 1개의 고등학교(128명)도 있다. 190여 명의 어린이가 다니는 유치원도 4곳이나 된다. 주민들이 도심으로 계속 빠져나가 폐교가 속출하는 다른 면 단위 시골 마을과는 딴판이다.

 주민들은 다섯 번째 교도소로 가능하면 여자 교도소가 유치되길 바라고 있다. 여자 교도소가 들어설 경우 기존의 3개 일반 교도소에 직업훈련교도소까지 더해 커다란 ‘종합 교정 타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아예 ‘교도소 마을’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인 셈이다. 방세환(43) 추진위 임시위원장은 “종합 교정 타운이 꾸려지면 행정기관이 하나 들어오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여자 교도소가 여의치 않으면 구치소나 교도소 체험관을 법무부에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청송이 지역구인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도 교도소 유치에 적극 나섰다. 김 의원은 “4개 교도소 인근의 국유지에 새 교도소를 지으면 부지 확보 문제도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도소가 모여 있는 광덕2리는 1980년 청송보호감호소가 들어섰던 곳이다. 이후 2005년 청송보호감호소가 해체되면서 일부 시설은 리모델링하고 노후한 건물은 허물고 새로 지은 뒤 지금의 교도소로 바뀌었다.

청송=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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