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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외면한 방송 편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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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최근 방영 중인 SBS 드라마 ‘루루공주’. 방영 초부터 간접광고 논란에 휩싸였다. 회사명 ‘코데이’ 등 협찬사(웅진 코웨이)를 연상시키는 설정이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황태자의 첫사랑’(MBC) 등 많은 드라마가 간접광고로 인해 제재를 받았다.

미디어 간 균형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할 정부(문화관광부)가 일부 방송에 유리한 광고 정책을 밀어붙인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간접.가상광고를 허용하는 내용 등이다. 프로그램의 질을 떨어뜨리고 공익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많은 시민단체와 학자가 반대해 온 사안이다. 신문협회는 17일 성명을 내고 "편파적인 미디어 정책을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 문화부가 '방송 편들기' 앞장=문화부는 올 4월 14명으로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했다. 방송광고 제도 전반을 손질하기 위해서였다. 구성을 놓고 처음부터 말이 있었다. 다수가 방송광고 확대에 우호적이라는 것. 물론 문화부는 그간 "어떤 선입견도, 확정된 정책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TF팀의 한 참석자는 "문화부가 방송 광고를 키운다는 목표 아래 방향을 조율해 왔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부가 주도하는 TF팀은 '협찬 노출'이란 신조어까지 탄생시켰다. 간접광고에 대한 거부감을 피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방송법 73조는 '방송 사업자는 광고와 프로그램이 혼동되지 않도록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다만 시행령에 '협찬 고지'라고 해서 협찬사를 자막에 적을 수 있게 했다. 그러니 '협찬 노출'이란 용어는 기상천외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업계에선 "용어를 혼재해 법망과 비판을 비켜가려는 전략"으로 해석한다.

이런 가운데 TF팀 운영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최근 정책 방향을 놓고 2명이 탈퇴를 선언했다. 논란이 커지자 정동채 문화부 장관은 "8월 말까지 TF팀 활동을 종결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시간은 없고 다뤄야 할 현안은 많은 상황. 전문가들은 "졸속으로 방송광고 제도를 바꾸기보다 '미디어 융합'이라는 환경변화에 걸맞은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방송위원회 관계자도 "방송광고 확대는 일방적으로 추진돼서는 안 된다"며 "특히 문화부가 주도할 입장은 아니다"고 밝혔다.

◆ "드라마.시트콤에 간접광고 허용"=본지가 입수한 TF팀 회의록들을 보면 내부 방향이 상당히 정해졌음을 알 수 있다. 문화부 TF팀은 "스포츠 중계에 한해 해당 방송시간의 3% 이내에서 가상광고를 허용한다. 현존하는 광고판을 대체하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 등에 의견을 모았다. 간접광고 역시 허용해야 한다고 합의했다. 다수의견이라고 한다. 드라마.시트콤에 한정하되, 용어는 '협찬 노출'로 쓰자고 했다.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중간광고와 광고총량제 도입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 시청시간대에 광고가 몰리게 돼 방송사 배는 부를 수밖에 없다. 피해는 시청자 몫이다. 시도 때도 없이 광고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광고제도 기본 골격을 흔드는 어젠다도 포함돼 있다. 방송광고 판매를 대행하는 복수 미디어렙 체제의 도입이다. 궁극적으로 각 방송사가 직접 광고수주에 뛰어드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는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지상파 광고 판매를 독점하고 있다. 광고수익을 위한 과잉 시청률 경쟁이 불 보듯 뻔하다. 중앙대 성동규(신문방송학과) 교수 등 많은 학자는 "이런 정책들은 방송광고 시장의 폐해를 극심하게 만들 것"이라며 "특히 방송 프로그램은 광고주의 볼모가 돼 프로그램의 질 저하가 예상된다"고 전망한다.

◆ 케이블 약진은 지상파 방송의 행복? =지상파 방송사들은 경영이 어렵다고 울상이다. 특히 케이블 방송의 약진을 비교치로 든다. 지상파의 광고수익과 시청점유율은 줄어드는 반면, 케이블은 급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상파에 대한 규제를 풀어줄 때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케이블의 성장은 지상파의 위기를 부르기보다 또 다른 수익창구가 된다. 이미 뉴미디어에 '문어발식 확장'을 해놓았기 때문이다. 122개 케이블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 홈쇼핑 제외)는 지난해 494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이 중 지상파 3사 계열 PP가 차지하는 비중은 82%다(그래픽 참조). 게다가 이들은 대부분 지상파 프로그램을 재탕.삼탕하는 거여서 제작비도 많이 들지 않는다. 케이블 협회 관계자는 "케이블 성장을 강조하는 건 규제를 풀기 위한 눈속임"이라고 말했다.

◆ 선진국들은 간접광고에 형사처벌까지=유럽연합(EU) 등 선진국에서 지상파 방송광고에 대한 규제는 엄격하다. EU는 '방송 지침'을 만들어 방송광고 가이드 라인을 제공한다. 규제 목표는 두 가지다. 광고주의 압력에 따른 프로그램의 질 저하를 막고 미디어 간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들 국가는 법으로 '광고와 프로그램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이미 독과점 상태의 지상파 방송에 광고 혜택을 더 주는 선진국은 어디에도 없다. 한 예로 독일은 간접 광고를 '은폐 광고'라 부르며 형사처벌까지 한다. 독일 공영방송 WDR의 프리츠 플라이트겐 사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공영방송에서의 은폐광고는 상상조차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김택환 미디어 전문기자,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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