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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자동차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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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히 자동차 ‘드라이브’가 대유행이다. 탕남탕녀가 발광하다 못해 남산으로 룡산(용산)으로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러브씬-’을 연출하는 것은 제딴에는 흥겨웁겟지만 자동차 운전수의 ‘핸들’ 쥔 손이 엇지하야 부르 떨리는 것을 아럿는지…” <조선일보 1933년 10월 9일자>

 1930년대에 이미 자동차 드라이브가 유행이라는 신문기사가 등장한다. 1903년 국내 첫 자동차인 고종의 포드 2인승 오픈카가 모습을 드러낸 지 채 30년도 안 된 시점이다. 고종이 차를 탈 당시 조선엔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일본인 운전수를 고용했다. 드라이브를 그다지 즐기지 않았던 고종과 달리 아들 순종은 자동차 마니아였다고 한다. 외국 공관 파티에 갈 땐 꼭 차를 타고 갔다.

 민간인으로 한국에서 자가용을 가진 최초의 한국인은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자 천도교 3대 교령이었던 의암 손병희다. 1915년 캐딜락을 탔다. 손병희 외에도 순정왕후 아버지 윤택영, 개화사상가 박영효, 서울 갑부 김종성, 연세대를 창립한 언더우드, 배재학당 아펜젤러 등이 당시 외제차를 타고 다녔다. 그나마 가장 싼 포드가 당시 쌀 700가마에 해당하는 4000원으로, 지금으로 치면 1억1000만원이다.

 남로당 당수 박헌영도 6·25 전쟁 중 차를 탔다. 원래 자기 소유가 아니라 삼성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빼앗은 차였다. 이병철은 전쟁이 발발하기 불과 이틀 전에 주한미국공사로부터 신형 시보레를 사들였는데, 북한군의 서울 함락 직후 박헌영이 이 차를 전리품처럼 챙긴 거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시작은 1955년 시발자동차회사 설립부터다. 300대의 미국산 지프 부품을 조립하고 드럼통을 펴 차체를 만들었다. 차 이름인 ‘시발’은 ‘첫걸음’이라는 뜻이다.

 근대시설을 갖춘 국내 최초의 자동차공장은 재일동포 박노정이 1962년 경기도 부평(현 인천 부평)에 세운 새나라자동차다. 일본 닛산의 1200cc 블루버드 승용차 400대분의 중간부품을 들여와 ‘새나라’ 승용차를 조립, 판매했다. 처음으로 국민차 반열에 들어선 건 1974년 기아가 일본 마쓰다와 협력해 제작한 브리사다. 같은 해 현대자동차는 토리노 모터쇼에 국내 최초의 고유모델인 포니(Pony)를 출품하고 이듬해 국내에 출시했다. 아시아에서 2번째, 세계에서 16번째 독자 생산이었다.

 이후 1985년 전국 자동차 등록대수가 100만대를 돌파했다. 국내 수출 1호 차 기록은 1966년 하동환자동차가 브루나이에 수출한 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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