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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전문배우 시리즈' 인터넷에서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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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전문화 시대다. 남과 다른 뭔가를 내세우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연기라고 예외가 아니다. A란 배우는 로맨틱 코미디가 잘 어울린다, B는 멜로의 감정선을 살리는 데 탁월하다 등의 평가는 결코 나쁜 꼬리표가 아니다.

▶ 밖에서 애 낳기 전문배우 한진희, 무능한 남편 전문배우 강남길, 염불낭독(관세음보살) 전문배우 강부자, 부도 전문배우 현석, 배신 전문배우 이종원. (왼쪽부터)

그런데 '형사반장 전문배우'란 말은 다소 생뚱맞다. 현재 인터넷에서 최고의 화제를 모으고 있는 '전문배우 시리즈'얘기다.

처음엔 장난처럼 시작됐다. 지난해 한 인터넷 사이트에 서너 명의 연기자를 두고 '무슨 무슨 전문배우'로 올린 글에 맞장구를 치는 네티즌들의 댓글이 올라오면서 널리 퍼져나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쟁력(?)이 있는 건 살아남고 공감대를 얻지 못한 것들은 도태됐다. 지금은 20여 명으로 라인업이 꾸려진 상태다.

배우 이종원은 '젊은이의 양지''청춘의 덫''애정의 조건' 등에서 오래 사귄 여자를 떠나는 주인공을 자주 연기해 '배신 전문배우'로 낙점됐다. 김용림은 '자개장 배경 시어머니 전문배우'로 분류됐다. 일일 연속극 등에서 그의 안방엔 항상 화려한 자개장이 놓여 있음을 풍자한 것이다.

해당 연기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극중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하면 '나무 관세음보살'을 자주 되뇌어 '염불 낭독 전문배우'로 언급된 강부자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별로 할말이 없다"며 시큰둥해했다. 반면 '밖에서 애 낳기 전문배우'가 된 한진희는 "바람기가 많다고 볼 수 있지만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얘기로도 들린다. 나이 육십이 넘은 남자가 그런 얘기를 듣는 건 오히려 기분 좋은 일"이라며 껄껄 웃었다.

'전문 배우 시리즈'는 그저 한번 웃고 넘기는 유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네티즌들의 오랜 담금질을 거쳐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엔 '재미'를 넘는 '함의'가 있다.

우선 20여 명의 전문 배우는 대부분 중견 연기자들이다. 당연히 연기력은 탄탄하지만, 지금과 같은 스타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나름의 '색깔'이 필요할 터. 배우 장항선은 이렇게 말했다. "곧 개봉될 영화 '강력 3반'에 캐스팅될 때 감독에게 물었어요. 왜 자꾸 나에겐 형사역만 맡기냐고요. 그랬더니 주위에서 다들 장항선이 제격이라고 하더래요. 이왕 이렇게 된 거 형사반장 섭외에서 항상 0순위에 오르게 하고 싶어요." 연기 생명을 길게 하려는 중견 배우들로선 특정 이미지를 일부러 고집하는 측면도 있다.

한편으론 연기자의 고정된 이미지를 제작사들이 지나치게 우려먹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대장금의 작가 김영현씨는 "어떤 캐릭터로 갈까 구상하다 보면 거기에 어울리는 배우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근데 막상 대본을 쓸 때면 본래 캐릭터는 없어지고 그 배우의 예전 이미지만 남곤 한다"고 토로했다. SBS의 한 드라마 PD는 "시청률과 빨리 찍어야 하는 제작 여건 등을 고려하면 시청자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답습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친숙이 지나치면 자칫 싫증이란 부메랑이 될지도 모른다. 싫증나지 않는 전문연기, 배우의 새로운 잠재력 발굴이야말로 전문화 시대 배우와 제작진이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아닐까.

최민우 기자

***전문배우 시리즈서 몇 개 뽑아보니…

.형사반장 전문배우 장항선

.자개장 배경 시어머니 전문배우 김용림

.짝사랑 전문배우 한재석

.어이없는 총각 전문배우 최수종.정보석

.친구 전문배우 김나운

.왕고집 시어머니 전문배우 박원숙

.재벌회장 전문배우 김성겸

.자상한 부자아빠 전문배우 김세윤

.철없는 남동생 전문배우 허정민

.복화술 전문배우 신성우

출처=마이클럽(www.miclu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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