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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이 만난 사람] MB정권 비판한 ‘개국 공신’ 정두언 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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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회고록을 집필 중인 정두언 의원은 “MB 정권 창출에 참여했던 사람으로 자성하는 입장에서 교훈을 남기는 게 역사적으로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현 정부에 대해선 다양한 목소리 경청을 주문했다. [김상선 기자]

MB(이명박 전 대통령) 정권의 ‘개국 공신’으로 꼽히는 새누리당 정두언(3선·서대문을)의원의 ‘입’이 요즘 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MB정부의 자원외교에 대한 국정조사에 찬성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다. 자원외교란 이 전 대통령은 물론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박영준 전 산업자원부 차관 등 정권 실세들이 앞장서 해외에서 전방위 자원 구매 활동을 벌였던 것으로, MB 정부는 이를 치적으로 꼽고 있다.

 정 의원은 2012년 임석 솔로몬 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가 지난 21일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한때 법정 구속되는 바람에 10개월가량 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정 의원은 기소에서 무죄 선고까지 2년여 동안 대외 활동을 자제해 왔다. 그러다 최근 “법적으론 무죄지만 인생살이에선 무죄가 아니란 걸 안다” “밑바닥까지 가봤는데 뭐가 두렵겠나” “약한 사람들 입장에서 정치하겠다”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정치적 시련이 그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일까. “MB정부는 실패했다”는 발언의 진의는 무엇일까. 지난 27일 궁금증을 안고 서울 남가좌동에 있는 그의 지구당 사무실을 찾았다.

 - 무죄 선고를 받았는데 억울하지 않나.

 “잘못을 안 했는데 조작에 의해 (감방에) 들어왔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나. 구치소에서 만족해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잘못한 사람조차 나만 재수없게 걸렸다, 너무 심하게 형을 받았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증오를 갖고 있으면 살 수가 없다. 그건 지옥이니까. 내가 살려면, 증오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제일 좋은 길은 용서하는 거다. ‘용서는 상대방을 놔 주는 게 아니라 나를 놔주는 거다. 용서는 나에 대한 사랑’이라고 한 달라이 라마의 말은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 구치소에선 어떻게 지냈나.

 “시간이 많으니까 생각이 많아지더라. 내가 잘못한 일들, 까마득히 잊혀졌던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내가 그런 놈이었구나’ 하는 몸서리가 쳐졌다. 이번 기회에 회개하자고 하고 보니까 여기서 내가 이렇게 있는 게 싸다,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법적으론 무죄지만 인생살이에선 무죄가 아니다”고 한 말도 그런 맥락인가.

 “그런 의미심장한 얘기를 했느냐고 하는 주변의 반응에 오히려 충격을 받았다. 당연한 얘기를 이제야 깨달았다는 걸 얘기하는 건데 의미심장하다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얼마 전 남부교도소로 면회를 간 적이 있는데 교도소장이 ‘죄수들한테 좋은 시설을 제공하는 데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 한때 죄수였던 사람으로 반발이 생기더라.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죄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가? 죄수냐 아니냐의 차이가 뭐냐? 들켰냐, 안 들켰냐의 차이다. 그런데 멀쩡히 자기는 죄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정치적으론 피해를 본 것 아닌가.

 “얻은 게 더 많기 때문에 억울해하지 않는다. 이 일이 없었으면 난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이 일이 없었으면 철없이 살다 죽을 뻔했다. 지금처럼 편안한 생활을 살 수가 없다. 이전의 나는 항상 쫓기고 전전긍긍하고 초조하고 짜증나고 화내면서 살았다. 욕심 때문이다. 그런 게 없어지니까 평온해진다. 이 일을 갖게 해준 분들이 내 인생의 트레이너라고 생각하게 됐다.”

 - 같은 사안으로 구속 기소된 이상득 전 부의장을 만나 봤나.

 “법정에서도 만나고 구치소에도 같이 있었지만 얘기 나누고 그럴 시간은 없었다. 그냥 스쳐 지나갔다.”

 이 전 부의장은 2007년 대선 직전 솔로몬·미래저축은행으로부터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지난해 항소심 형기(1년2개월)를 채워 출소했다. MB 정부 탄생의 양 축인 두 사람은 정권 초부터 대립했다.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정 의원은 소장파를 규합, 이 전 부의장의 총선 불출마를 요구하는 ‘55인 성명’을 주도했고 이 전 부의장 등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갈등이 고조됐다.

 - 왜 MB정부가 실패했다고 보나.

 “MB뿐 아니라 87년 이래 모든 정부가 실패했다. 똑같은 전철을 밟으면서 판박이처럼 실패했다. 똑같이 실패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집권과정에서 실패가 잉태되기 때문이다.”

 - 무슨 뜻인가.

 “돈 문제가 제일 크다. 대선을 치르다 보면 많은 돈이 들어가는데 돈이란 게 다 합법적일 수 없다. 대선자금이란 게 늘 위험한 거니까 보안이 필요하다. 그러니 측근한테 맡길 수밖에 없는데 가장 믿을 만한 측근이 결국 친·인척이 될 수밖에 없다. 친·인척이 국정 중심에 서게 되는데 이들은 선출된 권력이 아니고 비공식적 권력이니 견제와 감시에서 벗어나 있다. 친·인척 주변에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그 사람들이 국정 농단을 하는 일이 반복된다. 구체적으로 말하진 않겠지만 이명박 정부 때도 이어져 왔다.”

 - 구조적인 문제일까.

 “대선은 지상전이 아니고 공중전이다. 육상전(조직선거)은 의미가 없고 혼란과 문제만 일으킨다. 그런데 뭔가 기여하는 것처럼 보이려니까 조직을 만들고 조직선거로 몰고 간다. 조직 운영에 돈 대는 사람이 나타나고, 돈 대는 사람은 (자금에 대한) 회수를 해야 하니까 낙하산 인사가 벌어지고 이권청탁으로 이어지는 일이 반복된다.”

 - 2007년 대선 땐 어땠나.

 “대선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내가 지위를 팀장(총괄전략기획팀장)으로 한 건 선거를 콤팩트하게 치르려 했기 때문이다. (조직을) 벌이면 안 된다고 했는데 결국 기존 방식대로 가더라. 그렇게 했던 분들이 누군가를 알지 않나. 그분들을 중심으로 옛날 관행이 되살아나서 직능본부가 생기고, 임석이란 사람도 그런 과정에 들어오게 된 거다. 그걸 막지 못한 건 제 역량의 부족이다. 집권 후엔 그걸 끊어야 한다고 해서 (이 전 부의장에게) 참여하시면 안 된다 했다.”

 - 과거에도 이 전 부의장 등이 권력을 사유화했다고 비판했는데.

 “이명박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그게 도드라졌다는 거다. 민주국가에서 권력은 국민한테 있다.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게 권력을 위임하는 거다. 권력은 퍼블릭 굿(Public good), 공공재다. 그런데 받는 사람은 프라이빗 굿(Private good·사유재)으로 인식한다. 그걸 행사하는 사람도 친·인척, 패밀리 중심으로 돌아가니까 권력이 사유화된다. 권력 사유화란 말은 내가 처음 썼는데 이젠 보통명사가 됐다.”

 - 공적 지위를 갖지 않은 이 전 부의장이 자원외교에 앞장선 것도 권력의 사유화인가.

 “그건 권위주의의 문제다. 자원외교는 많이 확보하는 게 관건인데 돈이 많으면 못할 나라가 어딨나. 그런데 목표와 지침이 정해지니까 그냥 따라가 버린 거다. 대통령, 이 전 부의장, 박 전 차관 등이 앞장서 하니까 ‘아니다’는 얘기를 못하고 혈안이 돼서 비싸게 사들인 거다.”

 - 자원외교에 대한 국정조사에 찬성한다고 했다.

 “국정조사를 하자고 한 게 아니라 원론적 답변을 한 거다. 나도 저축은행 특위위원장 해 봤지만 국회가 국정조사해서 밝혀낸 게 없다. 당당하고 떳떳하다면 피할 게 뭐 있느냐는 거다. 하지 말자, 피하자고 하니까 잘못한 것 같이 보이지 않나.”

 - 자원외교에 어떤 문제가 있나.

 “팩트를 알고 있진 않다. 다만 자원외교란 컨셉트가 잘못됐다. 자원외교란 기치를 걸고 상대방 국가에 나 그거 사러 간다, 중요한 사람이 가고, 꼭 사야 돼 하면 상대방이 어떻게 하겠나. 값을 일단 올려 놓는 거다. 자원외교란 말 자체가 촌스럽고 난센스다. 처음부터 잘못된 거였다.”

 - 정 의원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나에 대한 대표적 악플이 ‘넌 이명박 정부 만들었다는 걸로 할 말이 없는 놈이다’란 거다. 정부가 실패했다고 평가받으면 대통령뿐 아니라 나도 책임이 있다.”

 - ‘정두언의 정치’를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나.

 “2000년 이후 네 번 선거를 치렀는데 공천 경쟁을 해본 적이 없다. 이전에 새누리당이 당선된 적이 없으니 경합이 없었다. 공천권자 눈치 볼 필요가 없으니 할 말을 할 수 있었다. 18대 때 외고 개혁과 감세 철회해 복지재원에 쓰도록 한 것, 증세를 시도해서 성공시킨 건 보람 있는 일이었다.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 어떤 정치를 할 건가.

 “약자 편에 서는 정치를 하겠다. 가진 사람들은 도와주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산다. 어렵고 약하고 힘든 사람을 위하는 게 정치의 소임이라고 본다.”

[S BOX] 사형수와 편지 왕래 … “아픔 공감하는 게 진정한 사랑”

“남의 아픔을 공감하는 게 진정한 사랑이란 걸 이제야 알게 됐다.”

 교회 안수집사인 정두언 의원은 10개월여 수감 생활에서 크리스천으로서 소중한 경험을 했다고 털어놨다. 특히 사형수들과의 편지 왕래를 통해 큰 가르침과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어떻게 사형수들과 편지를 주고 받게 됐나.

 “구치소에서 나오기 전 마지막 날 저녁 오후 9시 점호가 끝나고 같은 방을 쓰던 2명의 수감자들과 함께 찬송가를 불렀다. 2시간 넘게 수십 곡을 부를 수 있었다. 그 저녁이 너무 은혜로웠다. 한밤중에 구치소를 나와서도 그 마음이 오래도록 유지됐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초심을 유지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 끝에 사형수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왜 사형수인가.

 “세상의 가장 끝에 있는 사람들이어서다. 예수는 ‘최후의 심판’에서 양에게 천당행을 결정하면서 ‘가장 미천한 자한테 한 것이 나한테 한 것’이라고 했다. 중간에 끊긴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도 편지를 보내는데 내가 그들을 위로하기보다 그 사람들한테서 위안을 받는다. 오히려 날 위로하고 기도를 많이 해준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편지가 있나.

 “『용서』란 책을 보내준 걸 계기로 마음을 열게 된 사람이 있다. 그는 여태껏 고통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여기 와서 남의 아픔과 고통을 알게 됐다. 세월호 유족들의 아픔도 이해하게 됐다. 너무 미안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됐다고 적었다. 그때 퍼뜩 우리가 남들과 아픔을 공감할 때, 컴패션(연민)에 가까운 사랑을 나눌 때 신이 함께하는구나, 거기서 신을 만날 수 있는 것이란 걸 느꼈다.”

 이렇게 말하는 정 의원의 음성은 가늘게 떨렸다.

글=이정민 정치·국제 에디터 jmlee@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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