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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콤플렉스 따윈 쓰레기통에 던져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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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아들러의 심리학은 ‘개인 심리학’ ‘용기 심리학’으로 불린다. 인생의 문제에 직면하는 개인의 용기, 불완전한 자신을 인정하는 용기를 강조한다. [그림 인플루엔셜]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지음
전경아 옮김, 인플루엔셜
336쪽, 1만4900원

올 여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 나오는 낙타 이야기를 기억하시는지. 주인공 재열(조인성)이 해수(공효진)에게 자신의 인생을 옭아매고 있는 트라우마를 고백하며 하는 말이다. “사막의 유목민들은 밤에 낙타를 나무에 묶어둬. 그리고는 아침에 끈을 풀어주지. 그래도 낙타는 도망가지 않아. 묶여 있던 지난밤을 기억하거든. 우리가 지나간 상처를 기억하듯. 과거의 상처가 현재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는 얘기지.”

 만약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1870~1937)가 이 대화를 들었다면 이렇게 말했을지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로군. 그건 현재의 너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해!” 과거의 사건(원인)이 현재의 나(결과)를 규정한다는 ‘인과론’은 지그문트 프로이트 이후 심리학계가 공통으로 수용해 온 상식이었다.(드라마의 여주인공 해수 역시 정신과 의사다) 하지만 프로이트와 같은 세대를 산 심리학자 아들러는 이에 반박하며 ‘목적론’을 내세웠다. 그에 따르면 인과론을 맹신하는 한, 인간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인간은 경험에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지배받는다. 즉 어떤 ‘목적’을 위해 자신의 과거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게 인간이며, 재열은 자신의 까칠한 성격이나 바람기, 혹은 작가로서의 감수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에 받았건 상처를 이용하는 것 뿐이다. 따라서 스스로 자신의 특정 경험에 의미를 두지 않기로 ‘선택’한다면, 과거는 현재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알프레드 아들러

 프로이트나 칼 구스타프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불리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아들러의 이론을 소개하는 책이다. 공저자 중 한 명인 기시미 이치로는 일본 최고의 아들러 전문가, 고가 후미타케는 프리랜서 작가다. 고가는 20대에 처음 아들러의 심리학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아 무작정 기시미 선생을 찾아가 수년간 아들러를 토론했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청년과 한 철학자의 대담(혹은 상담) 형식으로 정리했다. 지난해 12월 일본에서 출간돼 8개월 만에 40만 부가 팔려나가며 2014년 상반기 일본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화제의 책이다.

 책에 등장하는 젊은이는 외모·학벌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하다. 철학자는 아들러의 “인간은 누구나 지금부터 행복해질 수 있다”는 강렬한 메시지에 기반해, 청년의 고민을 하나씩 논박해간다. 그가 보기에 사람들의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고 끊임없이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욕망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야 하며 동시에 타인과 나의 과제에 선을 긋는 ‘과제 분리’의 태도가 필요하다. 즉,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것이 누구의 과제인지(이 행위의 최종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누구인지)를 고민하고, 나의 과제에는 누구도 개입시키지 말라. 동시에 타인의 과제에 개입해서도 안 된다. 이는 다른 이들이 원하는 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미움받을 용기’다.

 책은 끊임없이 애인을 의심하는 남자(내가 아무리 고민해도 배신은 결국 타인의 과제다), 아이에게 공부하라 강요하는 부모(이 역시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는 행위다. 공부의 최종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부모가 아니라 아이이기 때문) 등 일상의 구체적 사례를 들며 아들러의 주장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나간다. ‘과거는 지금의 나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초반의 논의는 인생을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선(線)’으로 바라보지 말고 무수한 찰나 즉, ‘점(點)의 연속’으로 보라는 조언으로 연결된다. 즉, 어떤 목표를 위해 살지 말고 ‘지금 현재 여기를 춤추듯 살라’는 것이 아들러 행복론의 핵심명제가 된다.

 ‘행복은 환경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고 타인을 신뢰하라’ 등 메시지만 떼어놓고 보면 여타 자기계발서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서 시작해 이를 타인과의 관계, 공동체와의 관계로 확장해 나가는 방법을 논리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울림의 깊이가 남다르다. 그 방법을 안다고 해서 오랜 생각의 틀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러의 이 말은 여러모로 위안이 된다. ‘세계는 아주 단순하다. 인생 또한 그러하다.’

[S BOX] 프로이트와 아들러, 개와 고양이 사이

아들러 는 흔히 프로이트(1856~1939)의 제자로 알려져 있지만, 제자라기보다는 동료에 가까웠다는 의견도 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빈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한 후 1902년 프로이트의 연구서클에 참여한다. 이후 10년간 빈정신분석협회에서 활동했지만, 점차 프로이트의 학설에 의문을 가지며 대립한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움직이는 힘이 무의식과 무의식적 충동인 성욕, 공격성과 같은 것이라고 봤다. 그 중에서도 성(性)의 역할을 강조했다. 아들러는 성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인간이 지닌 하나의 능력이나 기능에 불과하다고 봤다. 그는 인간의 성격은 성적인 것보다는 열등감과 열등감의 보상과정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병약한데다 형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성장과정으로 인해 열등감이라는 감정에 주목하게 됐다고 전해진다. 결국 아들러는 1911년 협회에서 독립해 자유정신분석학회를 만들었다. 이런 행동으로 프로이트를 비롯한 동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아들러와 프로이트는 1911년 헤어진 이후 화해하지 않고 여생을 서로 비난하며 지냈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체구가 작은(아들러의 키는 약 1m55㎝였다) 아들러를 ‘난쟁이’라 부르며 자신이 난쟁이를 위대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아들러는 “거인 어깨 위에 서 있는 난쟁이는 거인보다 훨씬 더 멀리 볼 수 있다”라고 응수하며 자신의 심리학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 『20세기를 빛낸 심리학자』 (최창호 지음, 학지사) 참고.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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