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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 2035

다이어트보다 근육질 몸매의 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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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 현
JTBC 국제부 기자

‘체지방은 3kg 줄이고, 근육은 7kg 늘릴 것.’

 올해 건강검진 결과는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불어났던 몸무게를 조금 덜어냈는데도 체지방률이 적정 수준을 넘어섰다. 근육이 줄어든 탓이다. 내가 이렇게 물렁한 인간이 될 줄이야. 학창시절 체육시간에 꾀부리지 않고 시키는 대로 열심히 운동했고, 또래 여성들보다 활동량이 많다고 자신해 온 나였다. 콜레스테롤 수치도 정상치를 크게 웃돌았다. 얼굴만 20대지 몸은 ‘아줌마’ 수준이었던 거다.

 지난해 겨울휴가 때 발리에서 서핑을 한 번 배워보겠다고 나섰다. 구릿빛 피부에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살을 가르는 ‘캘리포니아 걸’을 머리에 그리면서. 현실은 처참했다. 파도가 지나가는 순간 보드에 재빨리 올라타야 하는데 장딴지 근육이 힘을 내지 못했다. 파도가 다가오는 방향으로 두 팔을 저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1m만 헤엄쳐도 파도가 오건 말건 보드에 드러눕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국 반나절 고용한 강사가 더 가르쳐 주겠다는데도 손사래를 치며 모래사장으로 기어 나왔다.

 외국에 갈 때마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언제 어디서든 배낭에서 운동화를 꺼내 신고 조깅을 하는 젊은 여성들의 모습이었다. 정말 땀에 흠뻑 절어서 ‘전혀 안 예쁘게’ 뛴다. 며칠, 몇 주 여행 온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렇게까지 운동을 챙겨 하는 게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다시 생각해 보니 운동은 그렇게 밥 먹듯이 하는 게 맞았다.

 내가 지나온 중·고등학교 체육시간을 떠올려 보면 구령대 그늘에 늘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수다를 떨고 있는 장면이 떠오른다. 모범생 몇몇이 예체능까지 만점을 받아야 하는 절박함에 몸을 움직였을 뿐. 그나마도 고3 땐 체육시간이라 쓰고 자습시간이라 읽는 수준이었다. 엄마들은 “열심히 공부해 나처럼 살지 말고 판사·의사가 돼라”고 응원해 줬지만,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혼내는 법은 없었다. 남들보다 2배 성공하고 싶으면 2배로 일해야 하니 체력도 2배가 돼야 하는데, 여자도 운동을 열심히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우리 사회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20대 여성의 건강상태엔 적신호가 켜졌다. 질병관리본부 조사 결과 20대 여성이 받는 스트레스가 전 연령 남녀 통틀어 최고 수준이다. 여성 흡연율·음주율도 20대가 가장 높다. 우리나라 여자들, 다들 다이어트에는 도가 텄다. 자주 먹는 식품들은 칼로리를 줄줄 꿰고 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지방이 아니라 근육이다. 12월, 줄줄이 잡힌 송년회 약속을 보며 늘어날 지방을 걱정하고 있는 당신, 부디 근육 키울 고민도 함께 하길 바란다.

이 현 JTBC 국제부 기자 lee.hyun@jt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