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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다시 보자, 명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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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매일 아침 출근시간 전부터 직장인들이 줄을 서는 서울 다동의 ‘무교동북어국집’. 1968년 개업 때부터 전날 술을 마신 손님들에게 국물을 무료로 ‘리필’해주는 인심으로 인기를 얻은 곳이다. 지난해 12월 중앙일보 week&의 ‘서울 속풀이 식당 10곳’에도 뽑혔다.

 그런데 이 식당의 북어(말린 명태)가 러시아에서 왔다는 사실을 아는 손님은 많지 않다. 식당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일부러 수입 북어를 사다 쓰는 게 아니다. 국내 바다에서는 더 이상 명태가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식당은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덕장에서 겨울 바람을 이겨내며 한국의 맛을 품은 러시아산 명태를 재료로 쓰고 있다. 식당 주인 진광삼씨는 “온풍기로 말린 게 아닌 자연 상태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말린 명태를 공수해 맛을 지켜가고 있다”면서도 “품질과 음식에 쏟는 정성은 변하지 않았지만, 우리 바다에서 나온 명태가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현상금 50만원 … 잡힌 건 3마리’ 지난 2월 해양수산부와 강원도가 내건 ‘명태 현상금’ 포스터. 국내산 혈통 보존을 위해 ‘산 명태를 잡아오면 50만원을 주겠다’고 했지만 3마리만 접수됐다.

 정부 공식 통계엔 지난해 국내 바다에서 잡힌 명태는 없다. 정부는 어획량을 t단위로 기록하는데, 1년 내내 잡힌 양이 1t이 되지 않으면 0으로 표시한다. 2012년도 사정은 마찬가지였고, 2011년엔 1t이 잡힌 것으로 기록돼있다. 소비자가 국내산 명태를 먹을 기회는 사실상 없다는 얘기다. 명태 어획량은 1980년대까지 연 7만t을 유지하다가 1990년 1만1500t으로 줄었고, 2004년부터는 100t 이하로 내려갔다. 반면 소비는 꾸준해 지난해 국내 명태 소비량은 국민 1인당 8마리 꼴인 24만t에 달했다. ‘국민 생선’이면서도 정작 국내산을 맛본 사람은 없는 셈이다.

 명태가 사라진 주된 원인으론 바닷물 온도 상승이 꼽힌다. 70년대엔 포항 앞바다에서도 명태가 잡혔지만, 이제는 강원도 양양·고성 부근 바다에서만 나온다. 그마저도 잡는 게 아니라 발견되는 수준이다. 올해 초 국내산 명태의 혈통 보전을 위해 강원도가 “명태를 산 채로 잡아오면 마리당 50만원씩 주겠다”며 ‘명태 현상금’을 내걸었지만, 불과 3마리만 접수됐다.

 해양수산부는 그동안 어린 명태인 노가리를 과도하게 잡아 올린 것도 국내산 명태의 씨를 말린 원인으로 보고 있다. 노가리는 일반 명태의 절반도 되지 않는 크기다. 1970년 노가리 어획이 합법화되면서 명태들이 알을 낳고 번식하기도 전에 모조리 잡혀 개체수가 급감했다는 것이다. 오광석 해수부 수산자원정책과장은 “명태는 수온이 5~10도 되는 곳에서 주로 산다는게 학계의 정설”이라며 “현재 강원도쪽 동해안은 이 정도 수온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에 따른 수온 상승만으로는 명태가 사라진 원인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소비되는 명태는 모두 해외에서 잡힌 것들이다. 특히 러시아산이 많다. 이러다보니 정부는 수시로 러시아 정부와 협상해 국내 어선이 러시아 해역에서 잡을 수 있는 양을 유지하려 애쓴다. 하지만 러시아도 차츰 자국 수산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어획쿼터를 줄이고 있다. 러시아는 한국 배가 자국 바다에 들어와 잡아가는 명태의 양을 연 4만t까지만 허용하고 있다. 2001년엔 20만t까지 가능했지만 그 양을 점차 줄이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은 지난해 20만t의 러시아산 명태를 따로 수입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명태 수출을 줄이거나 자국 해역 내 조업을 제한하면, 국내 수산물 물가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26일 기준 냉동명태 가격은 한 마리에 2093원으로 한 달전보다 3.2% 올랐다. 여름엔 가격이 내려가다가, 북어국·생태찌개가 인기를 끄는 계절이 오면서 오름세로 돌아선 것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최근 명태값이 오르고는 있지만, 아직 작년보다는 낮은 수준”이라면서도 “명태는 정부 뜻만으로는 수급 조절이 가능한 품목이 아니어서 가격 변동폭이 크다”고 말했다.

 해수부가 27일 ‘2015년 명태살리기 프로젝트’를 발표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무분별한 명태 잡이를 막고, 명태의 생태적 특성을 파악해 치어(稚魚)까지 키운 뒤 적정 수온의 해역에 지속적으로 풀어놓는 방식으로 2020년엔 다시 국내산 명태가 잡히도록 한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해수부는 우선 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KIMST)을 통해 명태 치어 생존률을 높이는 방법을 연구하기로 했다. 올해 해수부는 명태알 10만개를 구해 9만 마리를 부화시켰다. 그런데 치어들이 1㎝ 크기까지 자란 상태에서 모두 죽었다. 먹이를 제때 공급받지 못했거나, 세균에 감염돼 배가 부풀어올라 죽은 것이다. 오 과장은 “치어를 더 키워내는 데 실패한 것은 아쉽지만, 이에 대한 원인을 분석해 재도전하면 치어 생존률이 점점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해수부는 명태 알 뿌리기와 치어 생산을 병행할 계획이다. 내년 1월엔 명태알을 바다 위에 뿌려 자연 상태에서의 명태 생활사를 관찰한다. 이를 바탕으로 치어 단계까지 양식한 명태를 바닷속 20~60m 깊이에 방류하기로 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내년에만 100만 마리를 바다에 풀어놓을 예정이다. 동해 어민들이 우연히 발견해 잡아온 명태는 어미의 생활 특성을 파악하는 데 쓰인다. 해수부는 캐나다산 어미 명태 500마리도 들여와 함께 연구하기로 했다. 다양한 수온·수질 조건에서 실험 하면서 어미 명태가 번식하기 좋은 바닷물 상태를 확인해보겠다는 취지다.

 북한에서 잡히는 명태는 국내 환경에서 명태를 살리기 위한 연구에 더욱 적합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북한 원산만 주변에서 해마다 6만t의 명태가 나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서장우 해수부 어업자원정책관은 “명태와 알을 반입하기 위한 남북 협력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라며 “정치적으로 민감한 교류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여건이 나아지는대로 북한에 우리 의견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의 최종 목표는 국내산 명태가 매년 5만t씩 잡히도록 하는 것이다. 국내 소비량의 20.8%에 해당한다. 서 정책관은 “그에 따른 국내 어업 생산량 증대와 수입 대체효과를 감안하면 연간 4800억원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게 될 것”이라며 “도루묵과 대구를 동해안에서 되살린 경험을 활용한다면, 명태 자원 회복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세종=최선욱 기자

해수부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 시동
지난 2년간 1t도 안 잡혀 통계상 ‘0’
러시아도 수출 제한 … 가격 오름세
내년 치어 100만 마리 바다에 방류
북한과 교류도 … 연 5만t 어획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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