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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사망 0’ 하쿠바 … 비결은 촘촘한 마을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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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22일 규모 6.7의 강진이 발생했던 일본 나가노현 하쿠바 마을. 주민들의 끈끈한 연대에 힘입어 사망자 없이 전원 구조됐다. [나가노 로이터=뉴스1]

22일 밤 일본 나가노(長野)현 북부에서 발생한 규모 6.7의 지진에서 단 1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은 데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번 지진으로 완파 또는 반파된 주택이 54채에 달했다. 24일 현재 중상자 7명을 포함해 부상자가 41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진 규모도 컸지만 진원의 깊이가 5㎞로 다른 지진에 비해 매우 얕았던 점을 감안하면 ‘사망자 0’은 “거의 기적적”(도쿄신문)이다.

 지진은 같은 규모라 해도 진원지의 단층이나 해당 지역의 지질 등에 따라 피해가 달라진다. 하지만 이번 진원지에서 약 100㎞가량 떨어진 니가타(新潟)현 쥬에쓰(中越)지방에서 2004년 발생한 지진의 경우 진원의 깊이가 더 깊었음에도 사망자가 68명에 달했다. 따라서 ‘사망자 0’의 비결에는 다른 요인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등 일 언론들은 24일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현지 주민들의 끈끈한 연대에 힘입은 바 컸다”고 보도했다. 이번 지진으로 가장 피해가 컸던 하쿠바(白馬)마을에선 주민 26명이 무너진 건물 밑에 깔렸다 이웃 주민에 의해 전원 구조됐다. 집이 무너지지 않은 주민들이 붕괴한 가옥으로 모여들어 초기 구조에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건물 잔해를 걷어치우는 주민, 그리고 밑에 깔린 주민에게 “힘내라” “지금 구조대가 도착하니 조금만 참아”라며 큰소리로 응원하는 주민들의 ‘역할 분담’도 이뤄졌다.

 붕괴된 한 주택에서는 소방관과 인근 주민 5명이 두 살짜리 남아와 세 살짜리 여아의 생명을 살렸다. 시각장애가 있는 독거노인 집에 들어가 구조한 것도 이웃 주민이었다. 하쿠바 마을 가미시로호리노우치(神城堀之內)지구의 가마쿠라 히로시(鎌倉宏·62)구역장은 “주민 간의 강한 연대감이 있었기에 ‘희생자 제로’가 가능했다”며 “주민들의 안부 확인도 순조롭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가마쿠라 구역장에 따르면 평소부터 76세대 220명 전원의 얼굴을 다 알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사고 후 신속한 대응이 가능토록 한 ‘주민 네트워크 시스템’도 힘을 발휘했다. TV아사히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등을 겪으면서 어느 집에 몇 명이 살고 있고, 혼자 사는 노인이 어디 있는가를 상세히 담은 ‘마을 지도’가 작성됐다”며 “이를 토대로 현지에 출동한 구조대원의 활동이 신속히 전개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일본 전역에 폭넓게 보급되고 있다. 1995년 1월 17일 대지진을 경험한 고베(神戶)시의 경우도 현재 거의 100%가까이 주민 정보를 네트워크화했다. 사고 당시 어떤 형태로든 구조된 이는 3만5000명이었는데 이 중 80%인 2만7000명이 가족과 이웃주민에 구출됐다는 분석 때문이다.

 10년 전 대지진을 겪은 니가타 쥬에쓰 지방도 사고 당시 40%대에 불과했던 ‘자주 방재조직’이 현재 97.9%에 달한다. 2시간 내에 각 조직별로 피해상황을 집약해 누가 누구의 안부를 확인하는 지까지 치밀하게 정해 놓은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와 함께 이번 지진에서 붕괴된 가옥이 적었던 이유 중 하나로 “눈이 많이 내리는 현지의 특성에 따른 가옥 설계와도 관련이 있다”고 요미우리(讀賣) 신문은 분석했다. 폭설을 견딜 수 있게끔 기둥을 많이 쓰고 기둥의 두께도 굵게 하는 등의 조치가 있었기에 피해가 작았다는 설명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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