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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건국지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지난해 일본에선 거꾸로 도는 시계가 나왔다. 사람들은 줄을서서 이 시계를 샀다고 한다. 「호기심」을 상품화한 일본인다운 상혼.
그러나 요즘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바로 거꾸로 도는 시계와 어쩌면 그리도 같은지. 일본인들은 분명 무엇에 도취되어 있다. 호기심이 아니라 시계를 거꾸로 물렸으면 하는 잠재심리말이다. 『대일본제국』이란 영화가 만원사례고, 일본 역사 교과서의 왜곡은 이미 아는 얘기다.
여기에 이번엔 「만주건국지비」세우기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누구라면 알만한 점잖은 정치인들이 그 들러리를 섰다.
필경 오늘의 북경정부가 만주국의 황제 부의(부의)를 지금도 온실에 보호하고 있는 호의(?)에 용기라도 얻은 양 일본의 노정객들은 때아닌 궁리를 하고 있는 것같다. 아니, 그것이 착각만은 아닌 것이 바로 거꾸로도는 시계의 예와도 같다.
만주국 건국은 일본의 대륙참략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1931년 9월18일 미명, 봉천교의 유조청부근의 만주철도에서 느닷없이 폭파사고가 일어났다. 그 무렵 만주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육군부대(관동군)의 소행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중국군의 도발로 뒤집어 씌웠다.
남만주철도의 경비를 맡고 있던 일본군이 『자위를 위해』라는 구실을 조작한 것이다. 드디어 관동군은 중국군 토벌에 나섰다.
그날로 장춘. 사평가, 봉천을 공격, 점령했다. 불과 1만명의 관동군이 30만명의 중국군을 기습공격한 것이다. 얼마나 의도적이고 용의주도한 작전이었는지 알 수 있다. 결국 그해 안에 봉천, 길림, 흑룡강 3성을 완전히 장악하고 말았다.
이 사실은 국제연맹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이듬해 3월 리튼조사단을 파켠하기로 했다. 일본은 이 조사단이 도착하기 전에 자신들의 소행을 기성사실로 만들어 버려야했다.
청조의 폐제 부의를 서둘러 집정으로 앉히고, 수도는 신경(장춘)으로 선포했다. 연호까지도 대동으로. 독립국의 형체를 갖춰 놓은 것이다.
일본은 1932년 9윌 그 「만주국」이라는 것을 승인. 이들과 일-만의정서를 교환, 종속의 관계를 확인했다.
이것이 소위 만주국 건국의 시말이다. 일본은 관동군사령관을 주만대사겸 관동청장관으로 임명하고, 군과 정치의 전권을 한손에 쥐었다. 모든 것이 한잔도 침략의 수법과 똑같았다.
만주국의「지도이념」은 5족협화와 왕도악토. 5족협화란 손문이 한때 주창했던 한, 만, 몽, 회(회교촉) ,장(티베트촉)의 평등조화로 국가건설에 협력한다는 미명의 슬로건을 본뜬 것.
중국인의 민족적 저항은 이때부터 절정에 달했다. 토지를 빼앗긴 현지 주민의 적개심은 하늘을 원망할 정도였다. 만주주둔 일본군은 한때 l백만명에 달했었다.
그 여파는 한반도에도 미쳐 민족 탄압은 더욱 가혹, 가열해졌다.
만주건국지비는 결국 한우도 침략 기념비와 똑같은 의미를 갖는다. 일본의 시계는 분명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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