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0년 만에 돌아온 ‘바보 콤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덤 앤 더머 투’가 놀라운 건 20년 만에 만들어진 속편이라는 점만은 아니다. 짐 캐리(52)와 제프 다니엘스(59)가 20년 만에 바보 콤비의 코미디로 돌아왔다는 점도 놀랍다. 전편 ‘덤 앤 더머’ 이후 이들이 보여준 연기를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짐 캐리, 당신은 웃기기 위해 태어난 사람

‘덤 앤 더머’ 시리즈의 짐 캐리는 웃기려고 작정하고 태어난 사람 같다. 변화무쌍한 표정, 괴상한 목소리, 재치 있는 손동작까지 그의 개그 본능과 전형적인 코미디 요소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 코미디 천재가 불우한 성장기를 보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실직으로 가세가 크게 기우는 일을 겪었다. 어머니는 몸이 유독 약해 진통제를 먹고 누워 있는 날이 많았다. 짐 캐리는 훗날 인터뷰에서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캐나다 제철소에서 일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의 재능은 일찍부터 발휘됐다. 20대 시절 그는 토론토의 코미디 클럽 역역스(Yuk Yuk’s)에서 주목을 받았다. 관객 누구나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순서가 오면 그는 마이크를 잡고 한껏 떠들었고, 클럽 측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고정 프로그램을 맡겼다. 이렇게 토론토 일대에서 인지도를 쌓은 짐 캐리는 할리우드로 눈을 돌렸다. 1990년 방영된 TV 코미디쇼 ‘인 리빙 컬러’(FOX)가 출세작이 됐다. 흑인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이 쇼에서 그는 유일한 백인 출연자로 특유의 끼를 마음껏 선보였다.

그리고 1994년, 스크린에서도 코미디 배우로서의 탄탄대로가 시작됐다. 이 한 해 동안만 그는 ‘에이스 벤츄라’(1994, 톰 새디악 감독) ‘마스크’(1994, 척 러셀 감독) ‘덤 앤 더머’ 등 세 편의 코미디영화에 주연으로 등장해 큰 성공을 거뒀다. 고대 유물인 마스크를 쓰게 되면서 남다른 능력을 갖게 되는 ‘마스크’의 은행원도, 동물 흉내에 능한 ‘에이스 벤츄라’의 사립 탐정도, 그리고 ‘덤 앤 더머’의 바보 로이드도 모두 코미디 배우로서 짐 캐리의 다재다능함을 단번에 확인시켰다. 미국 일간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덤 앤 더머’의 짐 캐리를 두고 “저질스런 코미디를 연기해 낸 똑똑한 코미디언”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코미디영화는 ‘에이스 벤츄라2’(1995, 스티브 오드커크 감독) ‘케이블 가이’(1996, 벤 스틸러 감독) ‘라이어 라이어’(1997, 톰 새디악 감독) 등으로 이어졌고, 그는 명실상부한 할리우드 최고의 코미디 스타이자 흥행 보증 수표로 떠올랐다.

이후로도 그에게서 ‘코미디 배우’라는 수사가 떠난 적은 없지만 진지한 정극 연기도 가능하다는 걸 조금씩 보여줬다. ‘트루먼 쇼’(1998, 피터 위어 감독)부터 그랬다. 짐 캐리는 일거수일투족이 TV에 방영되는 삶을 살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는 주인공 트루먼 역을 맡았다. 세상의 거짓과 위선을 결국 알고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물을 특유의 긍정적 에너지로 표현했다. 반면 ‘이터널 선샤인’(2004, 미셸 공드리 감독)에서는 이전에 스크린에서 보여준 적 없는 우울과 고독을 온전히 드러냈다. 연인에 대한 기억을 자발적으로 삭제하고도 또다시 그 여자에게 이끌리는 남자 조엘 역을 맡았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연기는 배우 짐 캐리에 대한 새로운 인상을 뚜렷하게 했다. 하지만 그의 새로운 시도가 모두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으로 도전한 스릴러 ‘넘버 23’(2007, 조엘 슈마허 감독)에서는 숫자 23의 저주를 받아 살인을 저지르는 소설 속 주인공과 실제 삶을 동일시 하는 망상에 사로잡힌 인물 월터를 연기했지만 큰 호평도, 흥행 성공도 거두지 못했다.

제프 다니엘스, 그 안에 바보와 앵커 다 있다

전편 ‘덤 앤 더머’는 제프 다니엘스의 영화 이력에서 가장 높은 흥행 성적을 거둔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코미디 연기로 정평이 난 짐 캐리에 뒤지지 않는 웃음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의 연기 이력 전체를 살펴보면 그는 코미디 배우보다는 정극 배우에 더 가깝다.

‘랙타임’(1981, 밀로스 포먼 감독)으로 영화에 데뷔한 그의 두 번째 출연작은 ‘애정의 조건’(1983, 제임스 L 브룩스 감독).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네 개의 상을 수상한 영화다. 극 중에서 아내를 두고 바람을 피우며 뻔뻔하게 거짓말을 늘어놓는 남자로 등장한 신인 배우 다니엘스도 칭찬을 받았다. 곧이어 ‘카이로의 붉은 장미’(1985, 우디 앨런 감독)는 그를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할 신인 배우의 반열에 올렸다. 그가 이 영화에서 연기한 톰은 영화 속 영화 스타이자 영화 속 세계에 질린 인물이다. 스크린을 뚫고 현실 세계로 뛰쳐나온 톰은 자신의 팬인 세실리아(미아 패로)와 사랑에 빠진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 스타일의 신사적이고 로맨틱한 매너로 세실리아를 대하는 톰의 매력에 세실리아만 아니라 여성 관객들이 흠뻑 빠졌다. 제프 다니엘스는 이 영화로 처음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우디 앨런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 역시 코미디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이 무렵 제프 다니엘스가 보여준 연기는 ‘덤 앤 더머’ 시리즈의 코믹 연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덤 앤 더머’의 주연으로 큰 흥행 성공을 맛본 이후로도 그는 ‘아름다운 비행’(1996, 캐럴 발라드 감독) ‘101 달마시안’(1996, 스티븐 헤렉 감독) ‘트라이얼쇼’(1997, 조나단 린 감독) ‘디 아워스’(2002, 스티븐 달드리 감독) 등등 꾸준히 영화 이력을 이어갔다. 그 이력과 연기력에 비하면 대중적인 존재감은 그리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최근 들어 그의 연기력과 존재감을 새로이 각인시킨 것은 TV 드라마 시리즈 ‘뉴스룸’(2012~, HBO)이다. 카리스마와 지성과 근성을 고루 갖춘 뉴스 앵커 윌 맥어보이를 연기하면서 그는 새로운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맥어보이는 이 드라마의 첫 회부터 “미국은 더 이상 위대한 국가가 아니다”라는 말로 대학생 청중들을 당혹시키며 강렬한 인상을 줬다. 20년 전 ‘덤 앤 더머’를 본 관객들로서는 바보 해리와 앵커 맥어보이가 같은 배우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반면 앵커 맥어보이로 그를 먼저 접한 젊은 관객들 역시 ‘덤 앤 더머 투’를 보면 깜짝 놀라고도 남을 만하다.

제프 다니엘스는 연극 무대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열정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카이로의 붉은 장미’의 원제에서 그 이름을 딴 극단 ‘퍼플 로즈 시어터 컴퍼니’를 1991년 설립했고, 지금까지 15편의 연극 대본을 써 무대에 올렸다. 극장과 극단의 운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음반을 만들기도 했는데, 그렇게 만든 앨범이 무려 다섯 장이나 된다. 또 영화도 ‘수퍼서커’(2002)와 ‘에스카나바 인 다 문라이트’(2001) 등 두 편을 연출했다. 그는 현재도 극단과 극장을 운영한다. “음악과 연기, 연출 모두 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창조적 활동”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피터 패럴리(왼쪽)와 바비 패럴리 감독.

패럴리 형제의 코미디 세계

슬랩스틱과 화장실 코미디를 논할 때 형제 감독 피터·바비 패럴리(이하 패럴리 형제)를 빼놓고 이야기하긴 힘들다. 오줌을 무턱대고 들이키거나(덤 앤 더머), 정액을 젤 대신 머리에 바르고(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1998), 속옷 안에 살아 있는 랍스터를 집어 넣는(바보 삼총사, 2012) 등 이들의 영화는 말초적이고 원초적인 웃음을 선사한다. 배설물, 가래, 성기 같은 재료로 웃음을 주는 덕에 이들의 코미디를 즐기는 데 복잡하게 머리를 쓸 필요는 없다.

패럴리 형제 영화의 중요한 설정 중 하나는 통념 비틀기다. 상식을 뒤집는 행동을 하는 주인공들을 내세워 웃음을 준다. 신체가 불편하거나 지능이 떨어지는 인물을 코미디를 빚어내는 주인공으로 삼는 데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 ‘붙어야 산다’(2003)의 주인공 밥(맷 데이먼)과 월터(그렉 키니어)는 서로 몸이 붙어 있는 샴쌍둥이다. 신체적 핸디캡을 유리하게 이용하는 이들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햄버거 가게에서 일할 때는 환상의 콤비를 자랑하며 번개 같은 속도로 햄버거를 만들어낸다. 한 명이 섹스하는 동안 한 명은 컴퓨터에 몰두하는 멀티태스킹을 선보인다. 이를 비롯해 패럴리 형제의 영화 속 캐릭터들은 언제나 계산 없이 진실한 우정과 사랑을 보여주곤 한다. 유치하게 느껴질 법한 이들의 코미디에서 인간애가 느껴지는 이유다.

글= 윤지원 매거진M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