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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속이는 범죄" 독일선 형사 처벌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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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한국의 간접광고는 이미 직접광고에 근접해 있다. 금지돼도 이 정도다. MBC 드라마 ‘황태자의 첫사랑’(上)에선 협찬사 클럽메드를 연상시키는 ‘클럽 줄라이’ 로고가 등장했다. ‘파리의 연인’(中)의 CSV 상암은 누가 봐도 CGV를 떠올리게 한다. 아래는 등장 인물이 음료회사에 다니는 것으로 설정된 SBS ‘수호천사’. 웅진식품의 로고와 글씨체를 이용해 ‘우리’라는 로고를 만들었다.

"간접.중간광고 허용을 추진하겠다."

상업방송의 다짐이 아니다. 공영방송 KBS의 정연주 사장이 6월 1일 경영혁신안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내용이다. 주머니 사정이 안 좋으니 광고를 뚫겠다는 의지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주축인 방송협회는 6월 28일 간접광고를 허용해 달라는 건의문을 방송위원회에 냈다. 이에 대해 KBS 노조와 학계 등은 "공영방송이 광고에 매달리는 건 정체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라고 비판한다.

그런데 문화관광부가 올 초부터 지상파 방송사들의 요구에 맞장구를 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결론을 내린 건 아니지만, 광고규제 완화에 무게중심을 두는 모양새다. 최근 유럽 선진국들은 프로그램과 광고를 엄격히 구분하는 추세인데, 한국은 지상파 독과점 체제는 그대로 놔 두면서 특혜만 주려 하고 있다.

◆ "문화부 결론내려도 한 의견에 불과"=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은 1월 5일 광고인 신년교례회에서 "중간광고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경실련 등 시민단체의 격렬한 반발이 이어졌다. 정 장관은 14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중간광고에 대해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간접.가상광고 허용 여부는 10월까지 결론내리겠다고 했다. 문화부는 4월부터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광고제도 개선, 미디어렙(방송광고 대행사)도입 등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태스크포스팀 주변에선 "문화부가 지상파 방송을 돕는 쪽으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방송정책권을 갖고 있는 방송위원회는 문화부의 행보에 황당하다는 입장. 김정태 정책 2부장은 "문화부는 간접.중간광고 허용 여부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며 "아무리 결론을 내도 한 시청자가 의견을 내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광고규제 완화는 방송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사안으로 한쪽의 의견만 앞세워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 유럽, 은폐(간접)광고에 형사처벌도=많은 이가 광고 규제를 풀어야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오해에 불과하다.

상당수 유럽 국가는 아예 간접광고라는 용어를 허용하지 않는다. 시청자를 속이는 은폐(독일어 Schleier)광고라 부른다. 최근엔 이와 관련된 판결.정책들도 쏟아지고 있다.

독일 켐텐 지방법원은 지난달 바이에른 방송이 특정 호텔업자를 위해 특혜성 광고를 내보냈다며 벌금형을 때렸다. 형법 263조(사기죄)를 적용했다. 법원은 제작자가 빈털터리나 마찬가지이자 하루 5유로(6300원)씩 90일간 내라고 주문했다. 담당 검사는 "방송법에 정한 프로그램과 광고 구분을 고의적으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기소했다"고 설명한다.

공영방송에 대해선 더욱 엄격해 제 1공영방송인 ARD 스포츠 프로그램에서 은폐광고가 적발되자 바로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한국방송위원회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독일 미디어청의 미디어위원회도 이달 초 은폐광고를 강력히 경고하고 나섰다. 요리 방송 도중 와인 상표를 내보낸 VOX 방송사와 음악 프로그램에서 특정 음악 상표를 비춘 수퍼 RTL 방송사엔 경고장을 날리기도 했다. 독일 공영방송 WDR의 프리츠 플라이트겐 사장은 21일 한 인터뷰에서 "일반 방송도 마찬가지지만 공영방송에서의 은폐광고는 상상해서도 안 된다. 우린 독립제작사들이 만든 은폐광고를 철저하게 색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시청각 위원회도 은폐광고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TV 화면 속에 어떤 상품도 비춰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M6 방송국이 여행사 클럽 메드의 로고를, TF1 방송사가 푸조자동차 모델을 칭찬하는 내용을 내보내 15만 유로(약 1억89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중간광고 역시 자유롭지 않다. 독일 방송법에는 어린이 프로그램에 원칙적으로 중간광고가 허용되지 않는다.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다만 오락 프로그램의 경우 20~30분 이상 프로그램이 진행된 다음 중간광고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 간접.중간광고=간접광고(PPL)는 프로그램에서 특정 상품이나 업체를 드러내는 것으로 한국방송법에도 금지돼 있다. 중간광고는 방송 도중 광고를 내보내는 방식이다.

김택환 미디어 전문기자,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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