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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대립 구룡마을 … 화재 대피소도 따로 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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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0일 오후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화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뉴스1]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초입에 있는 마을회관에서 고성이 흘러나왔다. 마을회관에는 지난 9일 화재 때 집을 잃은 주민들을 위한 임시 대피소가 설치돼 있다. 주민들은 대피소를 찾은 강남구청 공무원을 쫓아내며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데 우리를 무시하는 거냐. 우리 쪽에 식사 지원도 제대로 안 해준다”고 항의했다. 마을회관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개포중 임시 대피소는 상황이 달랐다. 이날 오후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이 대피소를 방문했다. 대피소에는 강남구청 공무원과 자원봉사자들이 나와 주민들에게 식사 등을 제공하고 있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대피소를 이곳으로 정했는데 마을회관에 계신 분들이 이곳으로 옮기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피소가 두 곳으로 나뉜 것은 구룡마을 개발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 때문이다. 마을회관 대피소는 주민자치회, 개포중 대피소는 마을자치회를 중심으로 모여 있다. 주민자치회 쪽은 서울시의 환지혼용 방식을, 마을자치회는 강남구의 전면수용 방식을 지지하고 있다. 환지혼용 방식은 일부 토지를 소유주가 직접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양측은 자신들 쪽이 ‘진짜 주민대피소’라고 다투고 있다. 류귀범 주민자치회장은 “화재 현장과 가깝고 주민들이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마을회관에 대피소를 설치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이영만 마을자치회장은 “개포중 대피소에 있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것을 봐도 이곳이 진짜 주민대피소”라고 말했다.

 이렇듯 주민 간 갈등이 증폭되는 가운데 2011년부터 지금까지 13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서에서도 이 마을을 화재경계지구로 지정하는 등 특별 관리를 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주민들 사이에선 방화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 한 주민은 “화장실에서 처음 불이 났다는데 누군가 일부러 내지 않았다면 왜 화장실에서 불이 나겠느냐”며 “불이 나 한 쪽 세력이 약해지는 걸 바라는 사람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화재현장 근처에서 만난 주민 A씨(50)는 “마을 원주민이 아니라며 강제로 쫓겨난 사람이 많다. 그들이 원한을 품고 불을 질렀을 수도 있다”고 했다.

 서울시와 강남구는 구룡마을 개발 문제를 다시 협의하기로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구룡마을 개발계획 무산으로 사고가 났다고 생각하면 죄책감마저 든다”며 “강남구와 협력해 새 개발계획을 세워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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