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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곧 야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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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삼성의 우승이 확정되자 선수들은 마운드 위 투수 임창용(가운데)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임창용은 4연속 통합 우승을 상징하는 손가락 네 개를 펴고 하늘을 향해 손을 치켜 올렸다. 선수들은 일제히 임창용을 따라하는 우승 세리머니를 하며 승리를 만끽했다. [정시종 기자]

삼성 라이온즈가 프로야구 최초로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KS) 4연패에 성공했다. ‘해가 지지 않는 야구 왕국’이 탄생했다.

 삼성은 11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KS 6차전에서 넥센에 11-1 대승을 거뒀다. 우승을 확정한 순간, 선수들이 마운드로 뛰어나와 일제히 손가락 네 개를 펴며 4연패를 자축했다. 선발 윤성환이 6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고, 0-0이던 3회 초 채태인·최형우가 2타점 적시타를 연속으로 터뜨려 승기를 잡았다. 6회 초에는 나바로의 3점 축포가 터졌다. 최다 연속 KS 우승 기록은 1986~89년 해태가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해태가 정규리그 우승까지 차지한 건 1988년 한 차례 뿐이었다. 삼성은 프로야구 여덟번째 우승으로 33년의 역사상 가장 강한 팀으로 기록됐다.

 삼성은 KS 1차전부터 4차전까지 넥센과 2승2패로 맞섰다. 5차전에서도 9회 말 2사까지 0-1로 밀렸다. 그러나 상대의 수비 실수를 틈 타 최형우의 역전 2루타가 터졌다. 기세를 몰아 6차전을 대승으로 마무리했다.

 삼성의 살아있는 신화는 누가 만들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찾아 보면 삼성이 강해진 이유를 알 수 있다. 김성근(72) 한화 감독은 “야구는 감독이 한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그는 프런트(구단)와 늘 마찰을 빚었다. 프런트는 그들 나름대로 야구의 주체라고 믿는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매일 전쟁을 치르는 동안 구단은 중·장기적 비전을 갖고 전략을 짠다. 야구를 하는 건 선수이고 그들을 움직이는 건 감독이지만, 야구단 운영 주체는 프런트다.

 삼성 프런트는 “야구는 프런트가 한다”고 말한다. 2011년부터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차지한 자신감이다. 그들이 말하는 ‘프런트’는 자신이나 특정한 개인이 아니었다. 삼성 야구단에 있는 베테랑 직원들이고, 그들이 만들어 온 시스템이다.

 지난 3년간 삼성이 우승하면서 전력소모가 꽤 많았다. 올해 우승은 쉽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삼성은 마무리 오승환(32·한신)을 일본으로 보내줬다. 형식적인 이적료(5000만엔·약 4억7000만원)만 받아 오승환이 연봉(2년 총액 9억엔·85억원)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이후 삼성은 미국 시카고 컵스 소속이었던 임창용(38)을 마무리로 데려왔다. 임창용의 구위가 예전 같진 않지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삼성의 움직임은 선수들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전했다. 해외진출 자격을 얻거나 FA(자유계약선수)가 되면 가장 잘 챙겨줄 구단이 삼성이라는 믿음을 준 것이다.

 삼성은 2010년 12월 선동열 감독과 이별하면서 류중일(51) 감독을 내부 승격했고, 삼성 출신의 코치진을 구성했다. 일부에선 “지나친 순혈주의”라는 비판이 일었지만 삼성의 ‘삼성사람 챙기기’는 상당한 효과를 봤다.

 임창용에 앞서 2012년에는 이승엽(38)이 일본에서 돌아와 활약하고 있다. 동시에 2군에서 젊은 선수들이 계속 성장했다. 베테랑을 예우하고, 유망주와 경쟁시키는 게 삼성의 시스템이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의 충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2000년대 초반까지 삼성은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스타 선수들을 사들였다. 그런데도 우승을 못해서 프런트가 욕을 많이 먹었다. 실패는 자산으로 쌓였다. 삼성은 특정한 리더나 스타에 의존하지 않고 안정적 시스템을 갖추도록 방향을 전환했다. 2004년 말 현대에서 심정수·박진만을 사온 것을 끝으로 ‘선수 쇼핑’을 끝냈다. 대신 외국인·신인 선수 스카우트 강화와 2군 선수 육성에 집중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삼성그룹 사람들은 야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프런트가 중심을 잘 잡고 있으니 간섭할 게 별로 없다. 류 감독은 현장 지휘권 외에는 프런트를 믿고 존중한다. 프런트가 중심을 잡은 야구, 그게 통합 4연패에 성공한 삼성의 힘이다.

글=김식 기자
사진=정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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