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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예산 편성 안 한다니 … 맞벌이 그만두란 얘기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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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경기도교육청 홈페이지에 7일부터 사흘간 교육청을 비판하는 100여 건의 글이 올라왔다. 교육청이 내년에 3~5세 어린이집 무상보육(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대해 집단 반발한 것이다. 한 맞벌이 학부모는 “유치원은 종일반을 운영하는 경우가 드물고 방학이 길어 어쩔 수 없이 어린이집에 보낼 수밖에 없다”며 “직장을 그만두고 애만 보라는 얘기냐”고 항의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집 근처에 유치원이 없거나 추첨에서 떨어져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내는데 똑같은 세금을 내고도 혜택을 못 받게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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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상보육이 지난해 0~5세로 확대되면서 문제점이 곳곳에 불거지고 있다. 당장 3~5세 누리과정에 문제가 생겼다. 내년부터 각 교육청이 재원을 모두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경기도는 유치원(교육비)만 편성하고 어린이집 보육료는 편성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태다. 서울·인천 등은 두세 달치 보육료만 임시방편식으로 반영하기로 했다. 부모 입장에선 누가 예산을 편성하든 상관 없는데, 중앙정부와 교육감의 갈등이 곱게 보일 리가 없다.

 무상보육 예산은 2011~2013년 불과 2년 새 두 배가 됐다. 이에 따라 부작용과 갈등이 생겼다. 이런 갈등은 부실한 정책 설계로 인한 재정 낭비에서 비롯됐다. 수혜 대상이 시설보육 위주로 설계돼 있어 전업주부의 자녀가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데 제한을 받지 않는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전업주부 박모(27·여)씨는 네 살 된 딸을 어린이집에 보낸다. 아이 없는 시간에 집안 일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바깥 나들이를 한다. 서울 강남구의 전업주부 정모(29·여)씨는 18개월 된 아기를 오전 10시에 어린이집에 보내고 오후 2시에 데려온다. 정씨는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는 데 도움을 준다는 데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 맞벌이 부모들은 어린이집을 찾기 위해 애를 먹는다. 육아휴직 중인 심모(29·여·서울 광진구)씨는 내년 2월이 복직이라 마음이 급해졌는데 아이(9개월)를 맡길 어린이집을 아직 구하지 못하고 있다. 심씨는 “맞벌이가 1순위라고 했는데 국공립은 대기인원이 400명이 넘는다”며 “하루 4시간 아이를 맡기는 전업주부 엄마가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워킹맘이 애 맡기기가 어려운 때문인지 30대 여성 고용률이 2009년 52.7%에서 지난해 55.5%로 2.8%포인트밖에 늘지 않았다.

 해외에 체류 중인 아이에게도 가정 양육수당이 지급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올 1~7월 55억원이 지급됐다. 또 연 8조원을 쓰는데도 만족도는 더디게 올라간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 어린이집의 만족도는 3.77점(5점 만점), 가정어린이집은 3.93점이었다. 2009년 대비 각각 3.15%, 3.8% 증가에 그쳤다. 주부 남모(31·서울 구로구)씨는 “무상보육이 아니라면 차라리 내 돈 20만~30만원을 보태 더 질 좋은 곳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대로 가면 국채를 발행해 빚으로 복지 비용을 대야 해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복지 혜택을 조정할지 국민 부담(세금)을 어떻게 맞출지를 놓고 이번 기회에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보다 더 잘사는 복지선진국조차 무상보육을 모두에게 무차별적으로 제공하지는 않는다. 스웨덴은 부모가 취업 상태이면 주당 40시간, 그렇지 않으면 15시간만 무상보육 혜택을 제공하고 소득에 따라 보육료도 다르게 물린다. 호주는 취업 여부에 따라 지원받을 수 있는 시간이 주당 24~50시간으로 다르게 제공된다.

장주영·김혜미 기자, 인천=최모란 기자

워킹맘, 무상보육 예산 갈등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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