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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유지 소송 뒤집기 … 세금 1155억 지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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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경북 포항시 김종국 시유재산찾기 담당은 “예전에 땅 보상비를 안 줬다”는 개인 소송에 맞서 증거를 찾았다. 그 덕에 포항시는 1155억원을 아꼈다. [프리랜서 공정식]

도로는 사유지를 조금씩 물고 건설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걸 빌미로 도시마다 보상을 둘러싼 해묵은 분쟁이 이어진다.

 포스코가 들어서면서 팽창한 경북 포항시도 1990년대 말 시민들이 권익에 눈 뜨면서 도로에 포함된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일이 잦아졌다. 포항시 남구 죽도동 포항오거리가 대표적이다. 금싸라기 땅인 이 도로의 일부분(499㎡)이 2000년 소송에 휘말렸다. 원래 토지주의 상속인이 도로 사용료를 내놓으라고 했다. 포항시는 1969년 도로 건설 당시 보상 서류를 찾지 못해 패소, 사용료 2억원을 지급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토지 보상금도 다시 지급해야 할 판이었다.

 담당 공무원은 이게 아니다 싶었다. 김종국(56) 포항시 시유재산찾기 담당은 개인 땅을 보상하지 않고 어떻게 도로를 놓을 수 있었겠느냐는 의문을 품었다. 패소는 땅값을 이중으로 보상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김 담당은 그때부터 도로가 건설될 당시 보상이 이뤄진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찾아나섰다. 2006년 그는 수집한 정황자료를 붙여 거꾸로 포항시에 소유권을 이전해야 한다는 소송을 냈다. 대구고등법원은 포항시의 손을 들어줬다.

 포항시가 2003년부터 소송 등을 통해 도로로 편입된 개인명의 땅 소유권을 정리한 것은 지금까지 414건 654필지에 면적만 17만2300여㎡에 이른다. 1155억원어치다. 2006년에는 아예 전담팀을 설치했다. 98년부터 시민들 소송이 이어진 데 대응하기 위해서다.

 소송이 빗발친 초기에 포항시는 잇따라 패소했다. 증거 자료인 보상 서류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6년 동안 50여 건을 패소해 보상금 등으로 90억원이 나갔다. 안 되겠다 싶어 김 담당은 대학원에 다니며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을 공부했다. 판례를 연구하고 창의적으로 해법을 찾아냈다. 직접적인 보상 서류 대신 남은 정황자료를 활용하는 방안이었다. 포항시는 그때부터 관보와 토지분할조서·지목변경조서 등 정황자료를 법원에 제출했다.

 상황이 역전돼 포항시는 하나씩 승소하기 시작했다. 재판 과정에서 협박과 회유도 만만찮았다. 김 담당은 “그때마다 세금 낭비를 막는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말했다. 자료 준비로 휴일도 반납했다.

포항시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서울·부산 등 지방자치단체 수십 곳이 자문을 구하고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전국의 국도 편입 개인명의 토지를 전수 조사했다. 그는 이 공로로 지난 연말 포항시 ‘올해의 공무원 대상’을 받았고, 1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시상식이 열리는 ‘제38회 청백봉사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29년 전 포항시의 동사무소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김 담당은 ‘사랑실천 모임’의 회원으로 바쁜 업무 중에 어려운 가정을 찾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는 “부당한 이득이 더 이상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맡은 일에 더욱 충실하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포항=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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