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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의 음악 읽기] 모든 정석 타파 … 제멋대로 연주해 더 매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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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호 27면

글렌 굴드는 클래식 음악계의 편견을 깬 천재였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낮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제멋대로’ 곡을 해석했다.

다소 과격한 표현을 구사해도 용서하시라.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명예훼손 소송을 걸어와도 할 수 없다. 정말로 그렇다고 확신하니까.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나는 한국 가요계에 정말로 심각한 암적 존재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가수 박진영(사진)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그의 지대한 영향력 탓에 가수를 지망하는 이 땅의 숱한 청소년이 붕어빵 틀 속에 갇히고 있다. 다들 똑같은 발성을 연습하고, 이른바 겸손함이라는 똑같은 ‘애티튜드’를 강요받고 있다. 그런데도 아무도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다. 온당한 일인가.

언제부터인가 주말에 아내와 함께하는 즐거운 일과가 생겨났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시청하는 것이다. 엠넷의 ‘슈퍼스타K’를 필두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성행하는 각종 오디션 프로를 참 즐겁게 시청해 왔다. 그중 SBS의 ‘K팝스타’는 음악 외적 설정을 최소화하고 오직 노래 실력으로 흥미를 유발하는 꽤 괜찮은 프로그램이었다. 오디션의 특징은 출연자 못지않게 심사위원의 언행이 화제를 불러 모은다.

미국 팝의 흐름을 멜로디 라인에서 비트로 전환시킨 것이 마이클 잭슨인데 박진영은 그 대세를 훌륭하게 자기 것으로 소화한 실력 있는 뮤지션이었다. 음반 제작자로서도, 기획사 대표로서도 그는 꽤 유능한 인물인 것 같다. 그런데 ‘K팝스타’의 심사위원으로 그가 행하는 발언들을 접하며 경악을 금치 못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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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언제나 가르치려 든다. 가령 노래할 때 숨소리는 ‘공기 반 소리 반’이어야 한다는 명언을 했다.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느냐고 윽박지르는 광경도 여러 번 봤다. 그런 발성에 적합한 성대를 타고난 사람도 있겠지만 전혀 다른 호흡으로 노래하는 가수의 매력은 뭐란 말인가. 공기 소리는커녕 꼭 막힌 비음과 바이브레이션만으로 청중을 쥐고 흔드는 스티비 원더는 못 부르는 가수인가. 고함치듯 빽빽 내지르는 밴 모리슨이나 신경질적으로 울부짖는 로버트 플랜트에게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그들의 호흡법 때문이 아니라 생겨 먹은 대로 내지르는 자유로움 탓이다. 이른바 영혼의 울림을 전달받는 것이다.

음정이나 리듬감에 대한 지나친 강조도 마찬가지다. 죄수들의 영웅이었던 컨트리계의 대가수 조니 캐시는 평생토록 음정이 불안했다.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나 지미 헨드릭스도 딱딱 떨어지게 음정을 맞출 줄 몰랐고 밥 딜런의 노래 리듬은 아예 포기한 듯이 왔다 갔다 한다. 그들은 모두 한 시대의 기린아다. 제멋대로 하는 개성 속에서 매력을 발견하는 것이 대중음악의 속성 아닌가.

언젠가 혼혈 소녀가 나와 솔(soul)풍의 노래를 무반주로 멋들어지게 소화했다. 박진영 심사위원은 이렇게 말한다. “나 노래 잘해라고 과시하는 것 보기 싫다”고. 그때 그의 절망한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오디션이란 노래 솜씨를 뽐내고 과시하는 자리인데 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이른바 ‘겸손함’의 강요는 어린 참가자들을 위선적으로 만들어 놓기 십상이다.

심사 태도로서 가장 큰 문제라고 느끼는 것은 회차가 올라갈수록 매번 다른 것을 보여 달라는 요청이다. 그건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온갖 장르를 다 잘하라는 것은 자기 스타일을 가진 뮤지션이 아니라 장기자랑의 재주꾼을 주문하는 꼴이다. 가수 지망생들에게 음악정신에 심히 위배되는 요청을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하고 있다.

갈수록 오디션 참가자들 노래가 비슷비슷해지고 있다. 오디션 전문학원이 성행하는 탓이란다. 학원에서는 심사위원 구미에 맞춰 반복학습을 시킨다. 이건 음악도 뭣도 아니다.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 격인 ‘브리튼즈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를 빼놓지 않고 본다. 스타 심사위원 사이먼 코웰이 ‘이렇게 노래 부르라’고 가르치고 강요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는 다만 각각의 개성에 대해 호불호의 반응을 보일 뿐이다.

개인을 콕 집어 비판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음악이론에 정통해 보이니 모를 리가 없겠지만 나는 박진영에게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연주를 진지하게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굴드는 피아노 터치의 모든 정석을 다 깨 버리고 그야말로 제멋대로 연주한 인물이다. 굴드와 다른 피아니스트의 바흐 연주를 비교해 들으면 완전히 다른 곡처럼 들린다. 클래식음악에서 대중음악까지 모든 뛰어난 연주와 노래는 ‘이렇게 하라’는 정석과 통념을 벗어나면서 시작된다.

박진영에서 글렌 굴드를 오가는 동안 가을이 깊어간다. 이번 일주일 내내 날마다 굴드 연주를 듣고 있다. 혹시 클래식음악에 처음 관심 갖기 시작한 분이 있다면 굴드의 바흐 연주, 가령 영국조곡이나 평균율에 집중해 보라고 권한다. 클래식의 짜릿함이 뭔지를 경험할 수 있다.

김갑수 시인·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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