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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백성호의 현문우답

심마니의 눈이 필요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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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백성호 기자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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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풍경1 : 강원도 인제에서 심마니 김영택씨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산삼 캐는 일을 “500원짜리 동전 찾는 일”에 빗대더군요. 그런데 헬기를 타고 가다가 산에 휙 던져버린 동전을 다시 찾는 일이라고 합니다. 어이쿠, 그게 가능할까요. 그만큼 힘들다네요.

 오래된 산삼을 캤던 장소는 ‘1급 비밀’이랍니다. 자신이 죽을 때가 되지 않고선 아내와 자식에게도 절대 비밀이라네요. 왜냐고요? 거기서 다시 산삼이 올라올 가능성이 크니까요. 김씨는 650년이 넘는 1m30㎝짜리 산삼을 캔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25m 떨어진 지점에서 5년 후에 450년이 넘는 산삼을 다시 캤답니다. 새가 물고 가지 않는 한 산삼의 씨앗은 주위에 떨어집니다. 땅속에서 몇 년씩 잠을 자던 산삼이 올라온 겁니다. 그의 방에는 산삼을 든 당시 사진도 걸려 있더군요.

 #풍경2 : “누가 ××산에서 큰 삼을 캤다”는 소문이 돌면 전국에서 심마니들이 우르르 몰려옵니다. 그리고 그 산을 이 잡듯이 샅샅이 뒤집니다. 심마니에게 산삼 캔 장소는 뒤처리도 중요합니다. 흙을 판 흔적만 있어도 “이 근처에 산삼 있으니 가져가소”하고 광고하는 격이라네요. 김씨는 산삼을 캔 뒤에 흙으로 덮고, 다시 나뭇잎으로 덮고,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한참 떨어진 곳에다 남겼다고 했습니다.

 #풍경3 : 한번은 김씨가 부인과 함께 산에 갔답니다. 김씨는 지팡이로 지름 4m짜리 원을 부인 앞에 그렸습니다. “이 안에서 산삼을 찾아보라.” 부인은 심마니는 아니지만 김씨가 간혹 캐오는 산삼을 본 지 십수 년째였습니다. “동그라미 안에서 잎을 하나씩 뒤집어보며 몇 차례나 찾았다. 그래도 안 보이더라. 도저히 못 찾겠다고 했더니 남편이 지팡이로 가리켰다. 그제야 산삼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때부터 산삼 잎이 눈에 들어오더라.”

 가만히 듣다 보니 비단 심마니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도 산삼을 찾습니다. ‘행복’이라는 산삼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릅니다. 행복이 어떻게 생겼는지, 또 어디에 묻혔는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쿡, 쿡’ 찔러볼 뿐입니다. 이게 행복이겠지, 아니면 저게 행복일까. 한마디로 헬기에서 산에다 던진 500원짜리 동전을 찾는 심정입니다.

 행복 찾기. 그럼 영영 불가능할까요? 꼭 그렇진 않습니다. 행복도 캤던 장소에서 또 자라고, 캤던 장소에서 또 자라기 때문입니다. 산삼은 땅 속에 숨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줄기와 잎이 땅 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그래서 삼을 캐는 일이 가능합니다. 행복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습니다. 대신 땅 위로 ‘쑤욱’ 올라온 행복의 줄기, 행복의 잎이 있습니다. 그걸 잡고 쭉 내려가면 됩니다. 그 잎이 뭐냐고요?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온갖 문제’입니다.

 우리의 일상도 ‘지름 4m짜리’ 작은 동그라미입니다. 그 안에 행복의 줄기와 잎이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빤히 보면서도 놓칩니다. ‘문제=불행’이지, ‘문제=행복’이라고 생각하진 않으니까요. 그래서 우리에게도 ‘심마니의 눈’이 필요합니다. 산삼의 잎, 행복의 잎을 볼 줄 아는 눈 말입니다.

 문제와 답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문제 속에 늘 답이 있습니다. 문제를 풀기 시작할 때 우리는 조금씩 뿌리로 내려가게 됩니다. 그렇게 내려가다 뿌리를 찾으면 알게 되죠. 산삼의 잎과 산삼의 뿌리가 한 몸이구나! 일상의 문제와 일상의 행복도 한 몸이구나! 그럼 ‘산삼의 잎’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숱한 골칫덩어리. 그걸 보며 이렇게 말하겠죠. “여기가 산삼밭이네. 심~봤~다~아!”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