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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20만 명‘삼성고시’… 직무적합성평가 붙어야 볼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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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삼성그룹이 출신 대학, 스펙은 일절 참고하지 않고 ‘실무 능력’을 최우선시하는 새로운 대졸 공채 제도를 내놨다. 필기시험인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를 볼 수 있는 자격도 사전에 직무별 업무능력 평가를 통과한 지원자에게만 주어진다. 이에 따라 해마다 20만여 명이 몰리는 이른바 ‘삼성고시’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은 다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삼성그룹은 올해 초 도입하려다 대학가의 반발로 철회한 대학총장추천제는 시행하지 않기로 했다. 또 지방대학 35%, 저소득층 5%로 할당한 열린 채용제의 취지는 그대로 유지할 방침이다.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삼성의 채용 제도는 내년 하반기 대졸 공채부터 적용된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이준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5일 브리핑을 통해 “창의적이고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기존 시험 위주의 획일적인 채용 방식을 직군별로 다양화하는 방향으로 3급(대졸) 신입사원 채용 제도를 개편한다”고 밝혔다. 삼성이 채용 제도를 전면 개편하는 것은 1995년 열린 채용 제도를 도입한 이후 20년 만이다.

 가장 큰 변화는 ‘직무적합성 평가’ 도입이다. 기술·영업·경영지원 등 주요 직군별로 SSAT를 보기 전 업무 역량을 평가하는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과해야만 SSAT를 볼 수 있어 응시 대상자는 이전보다 크게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삼성 지원자 입장에선 시험이 더 늘어난 셈이다.

 업무 역량 테스트는 직군별로 차이가 있다. 영업·경영지원직은 ‘직무 에세이’를 제출하고 이를 검증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준 팀장은 “영업·경영지원직의 경우 글만 유려하게 쓴다고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얼마나 직무 관련 준비를 잘했는지 구체적인 콘텐트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연구개발·기술직과 소프트웨어 직군은 전공 능력 증빙 자료를 통해 직무 능력을 검증한다. 구체적으로 전공 이수비율, 심화과목 이수 여부, 전공 과목 학점 등을 평가한다. 특히 연구개발·기술직은 심화 과정이나 난이도 높은 전공을 많이 들을수록 SSAT에서 가산점을 많이 받는다. 소프트웨어 직군의 경우 SSAT를 치르지 않는 대신 약 4시간 동안 코딩과 알고리즘 등 프로그래밍 개발능력을 평가하는 ‘소프트웨어 역량 테스트’라는 실기시험으로 대체한다.

 삼성은 직무적합성 평가가 서류전형의 부활은 아니라고 밝혔다. 이 팀장은 “출신 대학이나 어학연수 경력 등 직무와 무관한 스펙은 일절 반영하지 않는다”며 “학점도 대학 4년 총평점이 아니라 직무와 관련된 전공 학점만 추출해 평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면접 단계에서 추가된 ‘창의성 면접’은 지원자와 면접위원이 토론하는 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논리 전개 과정을 평가하며 직군별로 진행 방식은 다르다.

 이번 채용 개편안에는 갈수록 급변하는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 대한 삼성의 고민이 담겨 있다. 모든 전자 기기가 서로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oT) 기반 초(超)연결 사회가 도래하면서 ‘시험형 인재’가 아니라 플랫폼·클라우드 등 ICT 분야 전문 인재가 절실해졌다. 특히 소프트웨어 인력 강화는 스마트홈 등 IoT 시장 선점과 직결돼 있다. 이 직군에서 SSAT를 폐지한 것도 “실무 능력이 있다면 시험 부담은 줄여주겠다”는 취지다.

 사실 주요 개편 항목은 이미 다른 기업에서도 실시하고 있는 제도들이다. 선발 분야 직군을 연구개발·기술과 소프트웨어, 영업·경영지원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누고 채용 방식을 차별화한 건 현대자동차의 ‘분할 채용 방식’과 비슷하다. 이공계 분야에서 학점을 총 평점이 아닌, 전공 필수과목 성적만 따지는 방식은 LG그룹과 유사하다.

 1박2일 면접, 종일 면접 같은 심층 면접은 지원자의 성품·성향 등을 중요시하는 은행권에서 주로 사용하는 채용 방식이다. 다만 인문계 출신 구직자들은 앞으로 삼성에 입사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연구개발·기술, 소프트웨어 직군에는 지원 자체가 어렵고 영업·경영지원에서도 전문 지식을 앞세운 이공계 출신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미영 인크루트 상무는 “삼성 입사를 희망하는 인문계 학생이라면 대학 신입생 때부터 마케팅과 정보통신 분야 지식을 쌓고 인턴십을 통해 직접 영업 경험을 쌓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소아·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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