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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노믹스는 정말 실패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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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종수
김종수 기자 중앙일보 부장
[일러스트=강일구]
김종수
논설위원

최경환 경제팀이 사면초가(四面楚歌)의 난국에 빠졌다. 경제살리기를 전면에 내걸고 지도에 없는 길을 나섰지만 경제가 나아질 실마리는 보이질 않고 사방에서 질타만 쏟아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아예 “박근혜 정권의 초이노믹스는 완전 실패했다”고 단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까지 경제상황이 나아졌거나 나아질 것이라고 예상할 만한 게 하나도 없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취임 직후 기대감에 부풀어 반짝 올랐던 주가는 그 이전 수준으로 주저앉았고, 성장률은 0%대를 벗어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투자와 소비 등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 가운데 수출마저 꺾이는 기운이 역력하다. 수퍼달러와 엔저가 수출여건을 혼돈으로 몰아넣는가 하면 국내의 간판 대기업들은 중국의 추격에 밀려 경쟁력을 급속히 잃고 있다. 각종 부동산 활성화 대책으로 잠깐 살아났던 주택시장은 이내 활력을 잃었고, 매기가 사라진 주택시장에선 전세난만 가중되고 있다. 안에서도 경기회복의 동력을 찾지 못한 가운데 밖의 여건마저 받쳐주질 않으니 경제가 살아나기는커녕 악화되기만 하는 형국이다. 이래서는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경기가 회복된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최경환 경제팀으로선 한마디로 ‘죽을 맛’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초이노믹스는 정말로 실패한 것인가. 아직은 그렇다고 단정하긴 이르다. 우선 최경환 경제팀은 출범한 지 불과 넉 달밖에 되지 않았다. 무얼 해보기에도 촉박한 시간이고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에도 짧은 시간이다. 또 최경환 경제팀이 의욕적으로 내놓은 각종 경제활성화법안들이 야당의 장외투쟁에 막혀 한동안 처리되지 않았고, 그중 상당수는 아직도 처리를 기다리는 중이다. 법률로 뒷받침되어야 할 정책들이 아직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최경환 경제팀으로선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초이노믹스가 실패했다는 야당의 질타가 억울하다고 생각할 법하다.

 그러나 경제상황 악화의 책임을 마냥 법안처리가 안 됐기 때문이라고 둘러댈 수만은 없다. 만일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들이 당초 일정대로 원만하게 처리됐더라면 지금쯤 경제가 확 살아났을까. 아마도 그렇다고 장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대외여건의 악화를 제쳐 놓더라도 당초 최경환 경제팀이 내놓은 이른바 초이노믹스가 경제회생을 보장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초이노믹스의 원형은 지난 7월 발표한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방향’에 담겨 있다. 골자는 크게 내수 활성화와 민생안정, 경제혁신 등 세 가지로 구성됐지만 방점은 역시 ‘내수 활성화’에 찍혀 있다. 내용인즉 재정과 금융 양면에서 확장적 거시정책을 펴고, 가계소득과 기업소득의 선순환을 통해 소비와 투자를 늘리며, 규제를 풀어 주택시장을 살리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첫 번째와 마지막 세 번째 정책은 전형적인 단기부양책이고, 두 번째 가계소득 증대방안은 다분히 심리적인 대증요법에 가깝다. 처음에는 경기부양책을 펼치겠다는 발표만으로도 경기회복의 시동이 걸리는 듯했다. 단박에 주가가 뛰고, 주택거래가 아연 활기를 되찾았다. 그러나 약발은 거기까지였다. 정부는 경제활성화법안 처리의 미비로 후속조치가 이어지지 못한 탓을 하지만 부양책 자체도 제대로 시행되기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최경환 경제팀은 확장적 거시정책이란 이름 아래 재정 12조원과 금융 26조원 등 40조원 안팎의 재원을 경기부양을 위해 퍼부을 듯이 발표했으나 실제로 시중에 풀린 돈은 얼마 되질 않는다. 추가 재정사업이 마땅치 않거니와 세수 부족으로 기존 사업도 제대로 집행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금융지원도 각종 명목으로 편성은 해놨지만 실제 집행실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한국은행이 뒤늦게 기준금리를 낮췄지만 돈은 여전히 돌지 않는다.

 한마디로 초이노믹스는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리는 심리적인 효과는 거뒀지만 실제로 경기를 부양하는 데는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다는 얘기다. 여기다 단기적인 경기부양에 치우친 나머지 경제 체질강화와 구조개혁과 같은 중장기 성장전략과의 연계성이 떨어진다는 약점도 있다. 확고한 중장기 성장전략의 부재는 단기부양책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국민들에게 부각시키는 데도 장애가 된다. 한국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한 체력을 보강하기 위해 단기적인 부양책이 필요하다는 식의 논리전개가 매끈하게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경기부양책과 경제혁신책이 각기 따로 놀고, 연관성이 떨어지는 개별 정책들이 산발적으로 나오는 모양새다. 이래서는 어떤 정책도 일관성 있게 추진하기 어렵다.

 초이노믹스가 무슨 대단한 경제이론이나 불변의 교리가 아닌 이상 실패여부를 따지는 것도 부질없고, 또 거기에 매달릴 필요도 없다. 어떻게든 경제를 살릴 수 있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경제여건이 바뀐 만큼 거기에 맞게 정책을 수정하는 것도 당연하다. 내년 경제운용계획을 보다 실효성 있는 새로운 초이노믹스로 개편해야 할 이유다. 어쩌면 진짜 부양책이 필요한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