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북 합작 애니메이션 '왕후 심청' 광복 60돌에 남북 동시 개봉 예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 왕후 심청

▶ 뽀롱뽀롱 뽀로로

▶ 게으른 고양이 딩가

■ 남북 합작 애니메이션 뒷얘기

극장용 애니메이션 '왕후 심청'이 8월 15일 광복 60주년 기념일에 남북한에서 동시에 개봉될 예정이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 활동 중인 재미교포 넬슨 신(68) 코아필름 회장과 북한의 4.26아동영화촬영소가 함께 만든 남북 합작물이다. 남북 공동 작품이 남북한에서 동시 개봉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8월에는 최초의 남북합작 애니메이션 '게으른 고양이 딩가'의 2차 시리즈가 국내에서 인터넷 등을 통해 공개되고, 올 겨울에는 남북 합작 TV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의 2차 시리즈가 EBS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남북 합작 애니메이션은 어떻게 제작되며, 북한 애니메이션은 무엇이 다른지 취재했다.

# 어떻게 만드나

6.15 선언의 여운이 남아 있던 2001년 2월 하나로통신(현 하나로텔레콤)은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산하의 삼천리총회사와 함께 '게으른 고양이 딩가'(1분×33부작)를 만들기로 계약했다. 하나로통신은 또 아이코닉스가 기획한 '뽀롱뽀롱 뽀로로'(5분×52부작)를 삼천리총회사 등과 2002년 8월부터 공동제작에 들어갔다. 1998년부터 국내에서 기획된 '왕후 심청' 역시 2001년 2월부터 북한 제작이 본격화됐다.

세 편 모두 캐릭터.시나리오 등 전반작업과 녹음 등 후반작업은 국내에서, 실제작은 북한에서 맡았다('딩가'의 경우 국내업체 페이스가, '뽀로로'는 국내업체 오콘이 실제작을 북한과 나눠 하고 있다). 직접 연락이 안 되기 때문에 중국 베이징에 사무소를 마련하고 이곳에서 인편.우편.팩스로 서울과 평양을 연결했다. 이러다 보니 작업이 자주 지연됐다.

# 북한 애니는 '범생이'?

역시 남북 간 문화 차이는 컸다. 하나로텔레콤 김종세(37) 영업지원팀과장은 "주인공 펭귄이 산에 오르는 모습을 북한에서 만들어 왔는데, 그 화면을 보고 모두 뒤집어졌다"고 말했다. 왜? 아이코닉스 최종일(40) 대표가 거들었다. "걷는 동작이 어찌나 각이 지고 절도가 있던지 말이죠." 마치 군인의 걸음걸이 같았다는 것이다.

김 과장은 "말이나 글로는 아무리 설명해도 안 되는 부분이 있더라"고 덧붙였다. "패스트푸드점이나 피자 가게가 배경이라면 우리는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익숙하죠. 하지만 그쪽에서 만들어온 장면은 어딘가 어색했어요. 북한 사람들이 겪어 보지 못한 장소이기 때문이겠죠."

신 회장은 "있는 그대로 그리려는 리얼리즘 경향이 강하다 보니 동작과 움직임을 과장.왜곡하는 애니메이션 특유의 맛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톰과 제리'에서 제리가 '휘리릭~'하고 사라지는 식의 표현이 부족하더라는 얘기다. 김 과장은 "설명만으로 납득하지 못할 경우 사진자료나 실제 동작을 캠코더에 담아 보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 애니의 수준과 저력은 상당하다. 북한에서는 1957년 아동영화촬영소가 만들어진 이래 '령리한 너구리' '소년장수' '호동왕자와 락랑공주' 등 수많은 작품이 제작됐다. 85년부터는 프랑스.이탈리아 등의 하청 작업도 많이 했다. 디즈니처럼 1초에 24장을 그리는 풀 제작방식을 고수해와 움직임이 부드럽다. 신 회장은 "5년제 미대 학생들이 3년 동안은 (조각을 전공해도)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데생 실력이 아주 탄탄하다"고 말했다. 김 과장도 "연출감각이 다소 미흡하기도 하지만 실제작 능력은 국내수준에 크게 떨어지지 않는 듯하다"며 "특히 3D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고 소개했다.

# 전망은

신 회장은 "제작 초기에는 월급제로 운영되다가 어느새 일한 만큼 돈을 받는 '실리경제'가 도입된 것을 보고 북한 사회의 변화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하나뿐이던 제작스튜디오도 늘어났다. 지난해 6월엔 평양정보센터 만화영화창작단이, 8월엔 중국 단둥에 삼지연창작사가 생겼다. 이에 따라 미국과 일본의 하청을 주로 해오던 우리 쪽이 기획과 마케팅을, 인건비가 저렴하고 손재주가 좋은 북한이 실제작을 맡는 구도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 대표는 "개성공단 쯤에 공동 스튜디오를 설치한다면 경쟁력 있는 작품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개성공단은 제조업 관련업체만 입주가 가능해 서비스업으로 분류된 애니메이션은 현재로서는 진입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정형모 기자

'왕후 심청'은 다르다
심청이는 얼짱·몸짱 아버지도 충신으로

'왕후 심청'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심청전'과 좀 다르다.

아버지 심학규는 뼈대 있는 가문 출신의 충신. 눈이 먼 것은 간신들의 음모 때문이다. 심청이가 빠진 인당수는 거대한 바다괴물로 형상화됐다. 삽살개.거북이.거위라는 조연 삼총사와 뺑덕어미의 아들 뺑덕이도 제몫을 톡톡히 한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주인공 청이. 얼짱.몸짱에 한문도 잘 읽고 바느질 실력도 뛰어난 효녀다.

다양한 판본을 두루 분석하고 요즘 감각에 맞게 시나리오를 각색한 신 회장은 "가난한 심청의 애절한 이야기가 아닌, 당당하고 야무진 심청이 왕비가 되고 아버지를 만나는 과정을 장대한 스펙터클과 탄탄한 이야기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황해도 평산 출신인 신 회장은 1971년 미국으로 건너가 애니메이터로 일했다. 국내에 애이콤프로덕션을 만들고 '심슨가족' 등 수많은 작품 제작에 참여했다. 7년간 70여억원을 들인 이 93분짜리 작품은 당초 2시간30분 분량으로 제작됐다.

지난해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장편부문 그랑프리를, 대한민국 애니메이션대상 장편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오는 광복절 메가박스 등 국내 60여개 극장과 북한의 국제영화관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북한 상영본은 북한식 억양에 맞춰 대사를 새로 녹음했다.

정형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