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디지털 세대 닮은 ‘냥이’ 전성시대 … ‘차도남’ 대신 ‘차도냥’ 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개와 고양이는 사랑 받는 동물로 그 순위를 다툰다. 굳이 따지자면 고양이보다는 개가 앞서 있었다. 흔히 ‘개와 고양이’라고 하지 않나. 고양이보다 개를 앞에 놓았다. 애견사에서는 개뿐 아니라 고양이도 취급한다. 하지만 애묘사라는 간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말하자면 애완동물의 대명사는 개였던 것이다. 더구나 요즘 같은 아파트 시대의 아이들에게 개는 마당에 있는 가축이 아니라 품 안에 있는 재롱둥이다.

 그렇지만 언제부턴가 개보다 고양이가 더 친숙해지기 시작했다. 단순한 느낌인가 싶어 확인해봤다. 사람들의 관심도를 보여주는 구글트렌드. 10년 전까지만 해도 두 단어의 검색 빈도가 비슷하다가 최근 들어서는 압도적으로 고양이가 더 높아졌다. 예측치도 그렇다. 1순위였던 개를 제치고 고양이의 시대가 도래했다.

 네이버 영화에서 2010년 이후 만들어진 영화 제목으로 비교해 보자. 제목에 ‘개’가 들어간 영화는 36건, ‘고양이’가 들어간 영화는 53건이다. 영화 제목은 관객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제목에 고양이가 더 많아진 건 관객의 취향이 변했기 때문이다. 개가 주인공으로 활약했던 영화 ‘하치 이야기’(1987), ‘베토벤’(1992), ‘101마리 달마시안’(1996)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장화 신은 고양이’(2011),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2012) 같은 영화가 더 주목받고 있으니 고양이,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주인이 밖에서 돌아오면 깡충깡충 뛰며 반기는 개와 달리 고양이는 빼꼼 내다보고는 만다. ‘너 왔냐?’ 요즘 디지털 세대는 그게 사랑스럽다는 거다. 인터넷에는 도도하고 거만한 고양이 이야기가 ‘냥이’라는 애칭으로 자주 올라온다. 컴퓨터 키보드 위에 드러누워 거드름을 피우다 먹을 것을 주면 먹고 그냥 휭 가버리는 고양이를 쿨하고 시크하다고 한다. 가끔 개처럼 응석을 부리는 고양이를 ‘개냥이’라며 특이한 성격으로 봐준다.

 예전의 도둑고양이는 이제 ‘길냥이’라며 대접받는 손님이 됐다. 암컷만 호시탐탐 따라다니는 고양이는 ‘냥봉꾼’이지만 쓸쓸한 도시의 솔로들인 청춘은 너그럽게 이해한다. 양자물리학 논란을 불러일으킨 ‘슈뢰딩거의 고양이’. 그 슈뢰딩거도 천재였지만 바람둥이였잖은가. 귀엽지만 냉정하고, 순진한 눈망울 속에 ‘영물(靈物)’의 영악함이 교차하는 고양이는 요즘 유행하는 베이글(베이비 얼굴에 글래머 몸매의 여성)처럼 복합적 요소의 결합 캐릭터다.

 과거 만화 ‘톰과 제리’에서 영리한 쥐에게 맨날 골탕만 먹는 고양이 제리가 아니다. 마피아나 악당 두목의 손안에서 함께 악역을 맡던 기억도 지웠다. 이제는 영웅 배트맨 영화에도 우아한 걸음걸이의 캣워크를 뽐내는 캣우먼이 등장한다. 행위예술가 낸시랭은 아예 고양이를 마스코트로 삼았고, 논객 진중권씨는 ‘루비 아빠’로 통한다. 요즘엔 고양잇과인 사자나 호랑이까지 용맹함이 아닌 ‘도도한 귀여움’으로 덩달아 사랑을 받는다.

 끈끈하다 못해 온갖 인연이 얽혀 사는 구세대와 달리 디지털 세대는 관계에 구속받는 것을 싫어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1인 가구가 거의 30%에 육박한다. 홀로 사는 젊은 디지털 세대는 독립심이 강한 고양이와 잘 어울린다. 주인이 나간다고 징징대거나 피곤한 주인에게 놀아달라고 보채는 경우가 별로 없다. “외로운 것이 아니라 홀로일 뿐”이라는 시크함이 닮았다. 게으른 듯 하지만 먹이를 잡을 때의 날렵함도 효율성과 결과를 중시하는 스마트 세대와 닮았다. 대소변을 스스로 해결하는 유난히 깔끔한 성격은 도시적 교양이다. 호기심을 못 참는 성격은 특정한 분야에 빠져드는 디지털 세대의 매니어적 기질과 통한다.

 이 가을 쓸쓸한 도시에는 차가운 도시의 남자, 아니 차가운 도시의 냥이(차도냥)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임문영 seerlim@gmail.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