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다' 미용사 성공 비결? 손님을 애인처럼 대했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김현태 라뷰티코아 대표가 헤어 스타일링 시범을 보이고 있다. 그가 든 빗은 18K 금으로 만들어졌고, 가위는 일본서 특별 주문생산한 것이다. [안성식 기자]

라뷰티코아의 김현태(42) 대표는 대형 토털 뷰티살롱(피부 마사지부터 헤어 스타일까지 봐주는 곳)의 최고경영자(CEO)다. 재벌가 사모님이나 톱스타가 그의 단골들이다. 지난달 로레알이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에서 연 ‘비즈니스 포럼’에 한국 헤어 디자이너 중 유일하게 강사로 초청됐다. 지금은 잘나가는 그에게도 한때 월급 9만원의 ‘시다’(견습생) 시절이 있었다. 그는 “가난과 중졸 학력에…. 정말 열등감이 심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타고난 성실함으로 자수성가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천에서 할머니 손에 길러졌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론 생활비를 벌어야만 할 형편이었다. 그는 “국궁장에서 화살 줍는 일을 비롯해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고 했다. 중학교를 나와 유흥업소의 DJ로 일하던 어느 날 그는 미용실 쇼윈도에 비친 미용사의 모습에 반했다. “하얀 셔츠와 까만 바지 차림에 머리를 자르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는 것이다.

 1990년 인천의 한 미용실에 취업했다. 월급은 9만원. 그는 “돈이 없어 미용실에서 줬던 점심 한 끼만 먹었다. 그래도 일이 재밌어 힘든 줄 몰랐다”고 회상했다. 그는 아직도 생애 첫 손님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첫 손님이라 머리를 감기는 데 온 정성을 다했다. 그랬더니 그 손님으로부터 계속 연락이 왔다. ‘진심으로 대하면 손님도 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뒤론 스타일을 만지는 시간만큼은 ‘손님은 내 애인’이라고 생각했다.”

 그해 ‘큰 물에서 놀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서울로 왔다. 그것도 당시 유행의 중심지인 서울 압구정동이었다. 오전 6시부터 밤 12시까지의 미용실 일은 고됐다. 힘들면 월세 10만원짜리 금호동 옥탑방에서 강남 야경을 바라다보면서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미용업계 입문 6년 만에 연봉 2억원의 스타 헤어 디자이너에 올랐다. 심은하·고소영·신애라 등 유명 연예인의 헤어 스타일을 만들어 더 유명해졌다. 2003년 독립해 라뷰티코아를 창업했다.

 그의 성공 스토리는 헤어 디자이너의 세계를 다룬 웹툰 ‘살롱 H’의 소재가 됐다.이 웹툰은 곧 드라마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김 대표는 “만화와 실제의 싱크로율(일치율)이 낮다. 일단 난 김현강(남자 주인공)처럼 잘 생기고 키가 크지는 않다”며 웃었다. 그러나 그도 만화 주인공처럼 가위를 수집한다. 그는 “최선의 서비스를 하려면 최고의 도구가 필요하다. 좋은 가위는 손맛부터 다르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아끼는 가위는 일본에서 특별 주문생산한 거란다.

 김 대표는 “한류의 인기와 함께 K-스타일도 전 세계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비달 사순이나 토니앤가이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헤어 디자이너가 더 전망 있는 직업이 될 것”이라며 “15세 아들도 이 일에 관심이 많다. 본인이 원한다면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글=이철재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