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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人] '부패관리 파면운동' 리바이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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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9시20분 중국 푸젠(福建)성 푸저우(福州)시 창산(倉山)구 인민법원 앞. 영하 16도의 삭풍이 살을 에는 날이었다 . 그 혹한 속 법원 정문 앞 길바닥에 80세 노파가 누워 있었다. 가랑잎 같은 노파의 몸은 연방 경련을 일으켰다. 조금 전 법원 정리들에게 끌려나와 짐짝처럼 길바닥에 내팽겨쳐진 탓이었다.

노파는 이날 새벽부터 법원 앞을 서성거렸다. 부당한 토지 보상에 항의하다 체포된 아들 린정쉬(林正 )의 재판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농민이 몰려들자 법원은 심리를 무기 연기했다. 노파는 법원 직원에게 연기 이유를 물으려다 밖으로 끌려나왔다.

이보다 3일 전인 12월 14일 오전 10시 푸저우시 창러(長樂) 비행장. 린정쉬를 변호하기 위해 베이징(北京)에서 날아온 리바이광(李柏光.37.사진) 변호사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대기 중인 공안(公安.경찰)에 체포됐다.

리바이광. 중국에서 거의 유일한 '인권 변호사'다. 농민들은 그를 '민중을 위하는 지식인(公共知識分子)'이라고 부른다. 그는 벌써 5년째 농민들을 위해 일해 왔다. 그 자신도 빈농 출신이다. 후난(湖南)성의 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3세 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유년기와 소년기, 청년기를 보냈다. 그는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장학금을 받으며 후난성 샹탄(湘潭)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베이징대에서 정치학 석사, 헌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2000년 변호사 자격증을 따자마자 농민들과 고문 변호사 계약을 했다. 수임료는 거의 받지 않았다. 그는 베이징에 '인민계발연구센터'를 차리고 '농민들에게 법 보내기(送法下鄕)' 운동을 펼쳤다. 농민들이 법률이라는 무기를 통해 스스로 권익을 쟁취하도록 돕는 일이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공안의 주목을 받게 된 계기가 바로 유명한 푸안(福安) 사건이다. 2003년 12월 그는 농민들의 부탁을 받고 푸안시에 내려갔다. 토지를 빼앗긴 뒤 나락으로 떨어진 농민들의 참상은 물론 현지 불량배와 악덕 지주들이 공권력과 짜고 어떻게 농민들을 쥐어짜는지를 낱낱이 조사했다. 2004년 2월 그는 각 향(鄕)과 진(鎭)의 농민 6만여 명이 연서한 서명서를 앞세워 '관리 파면 운동'을 전개했다. 파면 요구 대상자에는 란루춘(藍如春) 푸안 시장도 포함됐다. 중국 정계가 발칵 뒤집혔다. 이때부터 당국은 그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창러 비행장에서 그를 체포한 것은 바로 이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는 요즘도 바쁘다. 대륙 곳곳에 부당하게 모든 것을 빼앗긴 농민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그의 목표는 딱 하나다. 중국 공산당이 '공공을 위해 당(黨)을 세웠고, 인민을 위해 다스린다(立黨爲公, 執政爲民)'는 자신들의 구호를 실천으로 옮기도록 만드는 일이다.

진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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