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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 3주 이상 다치게 하면 정당방위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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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자기 집에 침입한 도둑을 폭행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뜨린 20대 남성에게 실형이 선고된 것을 놓고 ‘정당방위’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경찰의 정당방위 수사 지침 등 법 적용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3월 밤늦게 귀가한 최모(20)씨는 거실 서랍장을 뒤지고 있던 절도범 김모(55)씨 가 도망치려 하자 김씨의 뒤통수를 발로 걷어차고 빨래건조대로 등을 내리쳤다. 김씨는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져 현재까지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최씨 측은 “도둑을 보고 놀란 상태에서 정당방위를 한 것으로 최소한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과잉방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춘천지법 원주지원은 “아무런 저항 없이 도망가려던 피해자를 심하게 때려 식물인간 상태로 만든 것은 방어 한도를 넘어선 것”이라며 최씨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상당수 시민은 “집에 들어 온 도둑에게 수고하신다고 차라도 타줘야 한다는 거냐”며 “법원의 판단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형법에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정당방위 기준이 명시돼 있다. 문제는 이 기준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실제 정당방위를 인정받기 어렵다는 데 있다. 지난해 9월 20년간 폭력을 행사한 남편을 살해한 진모(49)씨의 경우 살인죄가 적용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정당방위 요건을 인정할 여지가 있다고 해도 생명을 침해한 것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정당방위를 둘러싼 시비가 끊이지 않자 2011년 경찰청이 대법원 판례를 분석해 정당방위 수사 지침을 밝혔다. ▶상대보다 먼저 도발한 경우 ▶상대방 피해가 본인보다 중한 경우 ▶3주 이상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입힌 경우 등은 정당방위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경기대 이수정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정당방위 기준을 떠올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정당방위 논란은 ‘뜨거운 감자’다. 지난 25일 이란에서는 성폭행을 시도하던 남성을 살해한 레이하네 자바리(26·여)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국제인권단체가 “정당방위”라며 무죄를 주장했으나 이란 사법 당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미국은 정당방위의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플로리다 법원은 먼저 얼굴을 때렸다는 이유로 흑인 소년에게 총을 발사해 숨지게 한 조지 지머먼에게 정당방위로 무죄 평결을 내렸다.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노명선 교수는 “그동안 법원이 정당방위 행위에 인색했던 게 사실”이라며 “기계적인 법리 적용에서 벗어나 좀 더 융통성 있게 정당방위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석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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