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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고위급 접촉 제의 대답도 없는데 … 남남 삐라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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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북한정권을 비판하는 ‘삐라’, 즉 대북전단 살포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대북전단 풍선에 대한 북한군의 고사총 사격(지난 10일 경기도 연천 지역)으로 촉발된 남북 간 군사 충돌이 이번엔 남남갈등으로 번졌다. 급기야 지난 주말엔 임진각에서 전단 살포 찬반세력이 충돌했다. 이번에는 북한의 고사총 사격 이후 접경지역 주민들이 불안감을 호소하며 전단을 뿌리려는 단체들을 적극 저지하고 나선 게 달라진 점이다.

 25일 파주 임진각과 통일전망대 일대는 온종일 보수단체 회원과 대북전단 살포를 반대하는 주민·시민단체 400여 명, 경찰 7개 중대 700여 명, 내외신 취재진 등이 뒤엉켜 혼란이 빚어졌다.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 등의 전단 살포 예고와 관련해 민통선 지역 주민 120여 명이 오전 9시부터 농사용 트랙터 20여 대를 몰고 나와 임진각 진입로를 막았다. ‘민주회복 파주 시국회의’ 등도 전날부터 임진각에서 노숙하며 전단 살포 저지에 나섰다

 오전 11시20분쯤 임진각 주변에서는 마스크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10여 명이 풍선 주입용 가스 등을 싣고 대기하던 탈북자 단체의 트럭을 급습해 상자 5개에 담긴 대북전단 일부와 풍선을 빼앗기도 했다. 이들은 준비한 도구로 풍선을 찢은 뒤 전단을 길가와 하천에 버렸다. 이 과정에서 40대 남성 한 명이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돼 업무방해 및 재물손괴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20분 뒤 보수단체 회원 30여 명이 탄 전세버스가 임진각 200여m 전방에 도착하자 전단 살포에 반대하는 단체는 계란을 던지며 거칠게 항의했다. 대치하던 양측은 오후 6시쯤 해산했다. 하지만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등은 오후 7시20분쯤 김포시 월곶면의 한 야산에서 기어이 전단 2만 장을 북한으로 날려보냈다.

 최우원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 대표는 “전단·풍선 강탈에도 굴하지 않고 북한 전역이 덮일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완배(61) 통일촌 이장은 “앞으로도 임진각에서 전단을 살포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직접 트랙터를 몰고 나가 저지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양측이 앞으로도 대북전단 살포를 놓고 충돌할 가능성이 큰 셈이다. 게다가 환경운동연합이 대북 전단 살포가 쓰레기 불법 투기에 해당한다며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 등을 26일 경찰에 신고했다.

 문제는 이런 갈등이 북한의 남한 흔들기로 촉발됐다는 점이다. 북한은 지난 2월 ‘상호 비방 중단’ 합의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우리 체제를 극렬하게 비방했다. 그러다 지난 4일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일행의 인천 방문을 계기로 유화 국면으로 급선회했다. 그러면서 우리 민간단체의 김정은 비판 전단 살포를 막아 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했다.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들어 난색을 표하면서도 해당 단체에 자제를 요청하고 경찰을 동원해 제지할 수 있음을 내비치면서 갈등은 찬반세력 간의 실력 대결로 번졌다. 북한은 이 틈을 파고들어 대북전단에 대한 총격 도발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등 긴장 국면을 조성했다. 남북 고위급 접촉 예정일로 우리가 제시한 30일을 나흘 남겨둔 26일에도 아무런 응답이 없다. 결국 북한은 “대화냐 전쟁이냐를 선택하라”며 대북전단 중단을 요구했고 우리 사회 내부는 균열을 보였다.

하지만 전단 살포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북한 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냉전시대도 아닌 지금 구체적 실익도 없고 남북관계 개선에 악영향을 미치는 대북전단 살포 행위는 자제돼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뿐 아니라 새누리당까지도 “남북관계를 고려해 행동해야 할 것”(25일 권은희 대변인 논평)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영종 기자, 파주=전익진 기자

사진 설명 : 우리끼리 몸싸움하고 계란 던지고 …

25일 경기도 파주시 자유로 인근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하려는 보수단체 회원들과 이를 막으려는 진보단체 회원들이 충돌했다. 민통선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들은 대북전단 살포를 저지하기 위해 임진각으로 농기계를 몰고 나왔다. 버스에 탄 보수단체 회원들이 지역 주민과 진보단체 회원들의 계란 투척에 맞서 물을 뿌리고 있다. [뉴시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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