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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잃어버린 8년에서 배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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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용수 기자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한민구 국방부 장관(오른쪽)이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과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정용수
정치국제부문 기자

2006년 초. 노무현 청와대의 지하 벙커에선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미국으로부터 환수하기 위한 대책회의가 매일 열리다시피 했다. 명분은 자주국방이었다. 안보가 허술해질 수 있다는 지적은 ‘국방계획 2020’으로 국방예산을 늘리고 군 현대화로 보완할 수 있다는 방어논리가 만들어졌다. 전작권 환수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과정은 그랬다. 당시 국방정책을 다룬 주역이 김장수 국방부 장관, 김관진 합참의장, 한민구 국방부 정책기획관이었다.

 2014년 10월 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인근의 펜타곤. 전작권 재연기 문서에 서명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브리핑룸에 섰다. “2020년대 중반까지 전작권 환수를 연기하기로 했다.”

 숙소인 호텔로 자리를 옮긴 한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한·미 동맹의 미래와 연합방위태세의 미래, 이런 것들이 다시 구축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나이 어린 김정은이 어떤 판단을 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작권 환수 재연기를 불가피하게 했다는 주장이었다.

 이 8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합참의장 김관진은 그 사이 국방장관을 거쳐 지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됐다. 김장수 당시 국방부 장관은 박근혜 정부 초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냈다. 전작권 환수론을 위해 뛰었던 주역들이 정반대 논리로 전작권 재연기를 위해 뛴 셈이다. 아이러니다.

 미 국방정책을 다루는 싱크탱크의 한 인사는 “한·미 간 전작권 협상이 시간을 끈 이유 중 하나는 한국 정치를 믿지 못해서였다”고 귀띔했다. 미국 입장에선 그럴 수밖에 없을 게다. 전작권 환수론을 펴던 인사들이 정권이 바뀌자 연기론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5년 단임제 대통령제의 특징, 그리고 진보성향 정부와 보수성향 정부의 대립 등을 설명한들 국가 간 협상 결과를 뒤집자는 얘기를 납득할 수 있을까.

 정치가 외교와 안보에 과도하게 영향을 미치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우리는 전작권 협상에서 배워야 한다. 실수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하는 거라는 얘기가 있다. 군 스스로도 변해야 한다. 2015년 12월에서 2020년대 중반으로 연기 또 연기하는 동안 전작권을 돌려받기 위해 군은 어떤 노력을 했는가. 무기 현대화를 통한 전력 증강보다는 윤 일병 사건 등으로 대표되는 군 내 사건·사고와 더 씨름한 건 아닌지. 킬체인과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구축엔 17조원이 들어간다. 이지스함이나 전투기 구입 등을 합치면 10년간 70조원이 넘는다. 이젠 더 이상 허비할 시간이 없다. 정부와 국회, 군이 하나가 돼 치밀한 계획과 전략을 짜야 한다. 또다시 ‘자주’냐 ‘안보’냐를 놓고 집안 싸움을 하기엔 잃어버린 8년이 너무 아쉽지 않은가.

정용수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