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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흥 지구 사업 취소 … 2500억 끌어쓴 주민들 어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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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이명박 정부의 핵심 주택정책이었던 보금자리주택사업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고 있다. 2018년까지 임대와 분양을 포함해 150만 가구 공급을 목표로 추진됐으나 주택시장 침체의 여파로 제동이 걸린 개발 사업이 속출해서다. 대상지역 땅 주인들은 예기치 않은 피해를 입고 있다. 대규모 택지 개발에 적합한 수도권의 마지막 노른자 땅으로 꼽히던 광명·시흥지구가 대표적이다. 보금자리주택 가운데 최대 규모였던 광명·시흥지구는 당초 분당급 신도시 건설을 목표로 사업이 추진됐다. 사업비는 24조원으로 9만4000가구에 23만5000명이 입주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지역은 2010년 5월 지구 지정 이후 사업이 지연된 끝에 최근 사업 취소 방침이 확정됐다. 사업 계획은 취소됐지만 이 지역 주민이 겪어 온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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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년은 이들에게 장밋빛 꿈이 악몽으로 바뀌는 시간이었다. 개발 사업이 꼬인 직접적인 원인은 2008년부터 시작된 주택시장 침체 여파다. 주택시장이 이미 냉각되기 시작했지만 상당수 주민은 토지 보상을 기대하고 은행에서 돈을 빌려 쓰기 시작했다. 이곳 땅 주인들이 지구 지정 이후 토지를 담보로 대출받은 돈은 2500억원에 이른다. 미개발 상태로 남아 있던 땅이 택지개발 사업에 수용되자 미리 돈을 당겨 쓴 것이다. 그러나 주택시장 냉각의 여파로 지난해 2월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보금자리주택 사업이 대폭 축소됐다. 명칭이 공공택지개발사업으로 바뀌면서 ▶분양주택 공급은 최소화하고 ▶임대주택은 행복주택으로 사업명이 변경됐다. 사업 취소가 거론되기 시작하던 지난해 6월에는 주택 공급 규모를 6만~7만 가구로 축소하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이마저 개발이 불투명해지면서 지구 해제로 방향이 바뀌었다. 그래도 주민 상당수는 사업을 원했다. 하지만 개발을 주관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142조원의 빚더미에 오르면서 사업 백지화가 불가피해졌다. 택지 개발을 위해 땅 주인에게 지급할 보상비 8조8000억원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주민들도 어쩔 수 없이 취소 방안을 받아들였지만 국토교통부가 부처 간 협의를 이유로 구역 해제를 미뤄 다시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러자 광명·시흥지구 범공동대책위가 국토부에 해제를 요청하며 올 들어 10여 차례 협상을 벌여야 했다. 그래도 확정되지 않자 지난 6월에는 주민 700여 명이 전세버스에 나눠 타고 세종시 정부청사를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그 후에도 다시 3개월이 흐른 지난달 4일에야 해제 방침이 확정됐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공공택지법을 바꿔 지구 해제를 공식화해야 하지만 이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김정렬 공공주택건설추진단장은 “내년 3월 시행이 목표지만 연내 국회 통과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회 통과는 정쟁 때문에 불투명하다. 진명규 광명·시흥지구 공동대책위원장은 “정부 말만 믿고 토지 수용을 전제로 담보 대출받은 사람들은 빚더미에 앉아 있다”며 “하루 빨리 지구에서 풀어줘야 악몽에서 벗어난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지금도 땅을 사고 파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 땅을 보유 중인 60대 남자는 “지구로 묶이고서는 증·개축을 비롯해 개발이 제한되면서 토지 거래가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지구 내 2217개 공장 정비도 꼬이게 됐다. 광명·시흥은 서울 영등포·구로·금천구에서 밀려나온 영세 사업자의 불법 건축물이 난립해 있어 정비가 필요하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구 내에 이전 부지 마련이 추진되고 있으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지구 해제가 되더라도 24개 취락지역 이외 지역은 난개발을 막기 위해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돼 1~10년 신축이 제한된다.

김동호 선임기자

◆보금자리주택=이명박 정부가 2018년까지 주택 150만 가구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한 장기 주택정책 사업. 주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해제하는 방식으로 모두 6차에 걸쳐 대상 지구가 선정됐으나 주택시장 침체로 착공 물량은 당초 계획의 15%에 그쳤다. 박근혜 정부는 보금자리 사업이란 명칭을 없애고 행복주택 사업으로 바꿔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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