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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치권, 지금 같은 모습으로 개헌 꺼낼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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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정감사가 오늘 막을 내리면 정치권은 개헌을 향해 줄달음칠 태세다. 여야 의원 155명이 “10월 중 개헌특위 구성”을 제안한 데 이어 개헌추진국회의원 모임의 고문인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국감이 끝나면 개헌특위 발족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국회가 개헌을 논의하는 걸 문제 삼을 순 없지만 개헌이 급선무인 양 호들갑을 떠는 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다.

 우선 국회는 개헌 논의에 앞서 그동안 정치 불신을 자초하고 무능·무책임한 모습을 보인 데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 앞에 사과하는 모습부터 보여줘야 한다. 비난받는 건 승자독식 구조의 제왕적 대통령제 탓도 있지만 정치권 스스로 불신을 초래한 책임도 크다. 여야는 선거를 앞두고 온갖 감언이설로 세비 삭감, 면책·불체포 특권 폐지, 윤리위 강화 같은 특권 내려놓기 공약을 내놓았다가 선거가 지나면 외면하곤 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에 따르면 19대 국회 들어 국회 운영위에 발의된 정치 개혁안(33건) 중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단 4건에 불과했다. 미방위는 다섯 달 동안 손 놓고 있다가 단통법을 졸속 통과시켜 휴대전화를 더 비싼 값에 사게 된 소비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골든타임의 불씨가 꺼져가고 있는데도 경제 살리기 법안엔 먼지만 쌓여가는 게 지금 우리 국회의 모습이다. 오죽하면 “일 안 하는 국회에 세비를 줘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겠는가. 현실이 이런 데도 고해성사 없이 권력구조 개편을 밀어부친다면 과연 국민들이 대통령의 권한을 국회가 나눠 갖는 개헌에 호응해줄지 의문이다.

 개헌을 주장한 여권의 한 인사는 “역대 정부에서도 개헌론이 고개를 들다가도 권력 내 막강한 2인자나 차기 주자의 반대로 매번 무산됐다”며 지금이 개헌의 적기라고 주장했다. 개헌론이 급속 확산되고 있는 건 여야 모두 뚜렷한 차기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는 현실과도 무관치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정치공학적 이유를 앞세운 개헌 논의는 자칫 기득권을 가진 정치권의 담합이란 의심을 살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김무성 대표가 언급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놓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염두에 둔 것이란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1조 2항)고 규정하고 있다. 개헌이 된다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국민을 위한 개헌이 돼야지 특정 정치세력이나 기득권자들을 위한 개헌이 돼선 안 된다. 그렇게 될 수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