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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내가 더 당해야 인정되는 이상한 정당방위 요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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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새벽에 집에 침입한 50대 도둑을 때려 뇌사 상태에 빠지게 한 최모(20)씨에게 실형을 선고한 법원 판결을 놓고 정당방위 논란이 일고 있다.

 재판부는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고 최씨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흉기가 없었고 도망가려고 했던 피해자를 심하게 때려 식물인간 상태로 만든 행위는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법원 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는 여론도 많다. “내 집에 침입한 도둑이 어떤 위해를 가할지 모르는데 가만히 앉아서 당하라는 말이냐”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정당방위를 둘러싼 논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가혹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살해한 아내에게 정당방위를 인정하느냐를 놓고 여러 차례 논란이 있었다. 경찰청은 법원 판례를 참고해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8가지 요건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요지는 ▶먼저 폭력을 행사해선 안 되고 ▶흉기를 사용하면 안 되고 ▶가해자보다 더 심한 폭력을 행사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상대방의 피해가 본인보다 중하지 않아야 하며 상대가 전치 3주 이상의 상해를 입어서도 안 된다고 돼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정당방위의 요건이 다소 비현실적이고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엄격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밤에 낯선 사람이 침입했는데 흉기를 들었는지, 자신과 가족을 해칠 의도가 있는지를 파악하기 힘들다.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려면 근처에 있는 몽둥이라도 집어 휘두를 수밖에 없다. 강도나 성폭행범에게 맞서다 보면 의도하지 않게 상대방에게 전치 3주 이상의 부상을 입힐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정당방위 요건에 따르면 이런 경우에도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게 돼 있다.

 따라서 정당방위의 요건을 지금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밤에 집에 침입한 강도와 맞서는 것과 사람 많은 술집에서 시비가 붙는 경우를 같은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소·상황·가해의도 등에 따라 세분화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을 방어하려다 폭행 가해자로 바뀌는 억울한 사례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