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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왕이 꿈꾸던 미술관의 ‘명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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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호 08면

ⓒIwan Baan
ⓒIwan Baan

파리 시민이 사랑하는 불로뉴 숲 가운데 아클리마타시옹 공원은 어린이들을 위한 종합 놀이시설이 있는 곳이다. 명품 브랜드 루이 비통이 이 공원 내 1만 1700 ㎡부지에 프랑스의 새로운 랜드 마크를 표방하며 재단 미술관(Fondation Louis Vuitton) 건립 계획을 밝힌 것이 2006년. 그리고 8년이 흘러, 오는 27일 드디어 일반에 문이 열린다.

27일 공식 개관하는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르포

20일 오후(현지 시간) 열린 오프닝 행사에는 베르나르 아르노 LVMH(루이 비통 모에 헤네시) 그룹 회장, 플뢰르 페를랭 프랑스 문화부 장관, 안느 이달고 파리 시장, 미술관 설계를 맡은 건축가 프랭크 게리 등 각국 문화예술계 인사 400여 명이 자리를 함께 한 가운데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개관을 공식 선언했다.

이날 개관식에는 루이 비통 아티스틱 디렉터 니콜라 제스키에르를 비롯해, 칼 라거펠트(펜디), 피비 파일로(셀린), 라프 시몬스(디올), J.W 앤더슨(로에베), 리카르도 티시(지방시) 등 LVMH 그룹의 주요 패션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디자이너들도 대거 참석했으며, 재단 미술관 내 레스토랑 ‘르 프랭크(Le Frank)’의 스타 셰프 장 루이 노미코가 준비한 만찬이 이어졌다.

이에 앞서 17일에는 세계 각지에서 500명이 넘는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가 열렸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 아르노 회장의 고문인 장-폴 클라브리, 루이 비통 재단의 아트 디렉터 수잔 파제가 직접 설명에 나섰다. 그 자리에 중앙SUNDAY가 다녀왔다.

미술관 내부는 밝은 빛이 들어오도록 설계돼 있다. 1층 로비에 들어서면 어디에서나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 ⓒIwan Baan
아르노 회장이 프랭크 게리(오른쪽)와 함께 개관 연설을 하고 있다.

아르노 회장 열정과 건축가 게리의 상상력 결실
미술관 개관에 앞서 가장 많은 관심을 모은 것은 역시 건물 디자인이다. 외관부터 상당히 인상적이다. 아클리마타시옹 공원 녹지에 누군가 마술을 부려 투명한 돛단배를 띄워놓은 형상이랄까. 아니면 하늘에서 구름이 내려와 앉은 느낌, 혹은 북극해를 떠도는 유빙 같기도 하다. 투명한 건물에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반사되니 초현실주의 작품 같은 느낌마저 든다.

건물로 들어서니 1층 너른 로비로 환한 빛이 들어온다. 로비의 어디에서든 하늘이 보인다. 밝고 정갈하고 아늑한 느낌이다.

아르노 회장이 미술관 건축과 관련해 게리와 첫 대화를 한 것은 2001년. 평소 건축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아르노 회장은 자신의 고문인 클라브리와 함께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방문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대단한 것을 상상할 수 있고, 이것을 또 실현할 수 있단 말인가?”

오랜 세월 재단 건립의 꿈을 꾸어왔던 그에게 게리보다 더 적합한 건축가는 없어 보였다. 둘의 만남이 곧바로 이루어졌고 루이 비통 재단에 대한 설명을 들은 게리는 종이에 펜으로 끼적거리다시피한 크로키를 처음 선보였는데, 지금의 건축은 바로 그 크로키에서 시작됐다.

그의 디자인을 구체화하는 모형이 60개 이상 만들어졌고, 최첨단 테크놀로지와 세계 정상급 엔지니어들이 총동원됐다. 특히 전투용 비행기를 만드는 프랑스 회사 다쏘시스템이 개발한 소프트웨어 카티아(CATIA)가 큰 역할을 했다.

건축가의 비전과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노력도 놀랍다. 100명의 정상급 기술자와 3000명의 현장 인력이 동원됐다. “이 프로젝트가 프랑스 첨단 기술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클라브리는 “그렇다”고 자신있게 답했다.

이런 규모의 건축 프로젝트를 실현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예산이다. 베르나르 아르노는 이를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행운의 인물이다. 초기에 예상 예산만 1억 달러였는데 이 금액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자 “꿈은 값으로 따질 수 없다”는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항상 프랑스를 사랑했다. 1960년대에 파리에 와서 고딕 빌딩도 보았고 중세 빌딩도 보았고 로마네스크 건물도 보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었다. 오늘 이렇게 프랑스인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기쁘다. 나는 모두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

프랭크 게리는 프랑스에 대한 애정을 털어놓으면서 말문을 열었다. “이 건물은 항해하는 배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 나의 관심은 처음부터 ‘움직임’에 있었고 사람들에게 특별한 ‘느낌’을 주는 건물을 창조하고 싶었다. 나는 미니멀리즘의 절제됨과 차가움과는 반대로 인간적인 교감과 따뜻함을 주는 미술관을 만들고자 하였다. 이곳에는 어떠한 특별함도 없다. 이것은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하나의 터전일 뿐이다. 그리고 이곳은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이 되어야 한다.”

이 미술관이 들어선 곳이 어린이 공원임을 생각해보면 미술관이 자라나는 어린 세대들에게 그리고 어른들에게도 문화적 삶을 향유하는 ‘놀이터’가 되길 소망하는 그의 바램은 이 개관을 주목하는 프랑스인들의 소망이기도 하다.

올라퍼 엘리아손 ‘Inside the horizon’ ⓒ2014 Olafur Eliasson ©Iwan Baan

미술·음악·대화의 장 그리고 문화의 중심
‘포브스’지의 백만장자 명단에 의하면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자산 350억 달러를 보유한 프랑스 최고의 부자다. 전 세계 부자 리스트에서는 13위에 올랐다. 아르노라는 이름은 몰라도 전세계 럭셔리 브랜드 1위 기업인 루이 비통 모에 샹동 헤네시(LVMH)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파리 샹젤리제에 위치한 루이 비통 본점 앞에는 전세계 사람들이 가방을 사기 위해 줄을 선다. 이런 경제적 성공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문화적인 성공이 뒤따라야 하는데, 루이 비통의 문화적인 기여에 대한 노력의 결정체가 바로 루이 비통 재단이다.

까르티에 재단이 이미 30년 전 문을 열었고, 비록 개인 재단이긴 하지만 경쟁자인 프랑소와 피노의 재단이 베니스에 문을 연 지도 거의 10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 루이 비통 재단이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단순히 문화 마케팅을 내세운 이윤 창출이 목적이 아니라 경제적 성공을 사회에 문화적 혜택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진정성 있는 프로그램을 기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일 개관식에 대통령을 비롯한 프랑스 정치경제문화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이유도 공공 재정으로 할 수 없는 문화 사업을 민간 재단이 적극 추진하며 프랑스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르노의 경제적 영향력은 이렇게 문화적으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재단 미술관이 설립된 부지는 파리 시 소유다. 파리 시가 루이 비통에게 55년 대여를 조건으로 재단 설립 허가를 내주었고 이미 5년이 흘렸으니 50년 후 이 건물은 파리 시 소유로 넘어간다. 클라브리 대변인은 이를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막대한 운영 예산 역시 파리 시에서 충당해야 하고 세금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이같은 필자의 질문에 클라브리 고문은 “50년 후의 일은 50년 후에 가서 생각하기로 한다. 그때 가서 아르노 회장의 자손들이 지원 사업을 이어갈 지 기대해 봐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게리는 재단 미술관의 내부 콘텐트를 기획하는 아트 디렉터 수잔 파제에게 “내가 바이올린을 만들었으니 연주는 당신의 몫”이라고 말했다. 파제는 이날 “현대 미술계를 이끄는 정상급 작가들의 전시를 기획하고, 아르노 회장의 개인 컬렉션을 선보이며,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3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당에서 음악회와 컨퍼런스를 기획하는 등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20일 개관 기념식에서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와 첼리스트 앙리 드마르케트가 축하 공연을 하고 있다.

한국·일본 등 아시아 작가들도 초청 예정
베일에 쌓였던 전시 프로그램은 내년 3월까지 하나씩 공개될 예정이다. 우선 개관 기념전은 건물을 디자인한 여든다섯의 노장 건축가에게 영광을 돌리고자 했다. 프랭크 게리가 재단을 디자인하고 첨단 기술로 이를 실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가 메인으로 꾸며졌다. 퐁피두 센터에서도 게리의 개인전이 동시에 개막했으니 그야말로 ‘프랭크 게리의 날’ 이라는 클라브리 대변인의 말이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다른 전시들은 2% 아쉬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루이 비통에서 작가들에게 의뢰한 프로젝트로 구현된 작품들이 이번에 공개가 됐는데, 그 주인공은 올라퍼 엘리아손, 사라 모리스, 타린 싸이몬, 엘스워스 켈리, 아드리안 빌라 로자스다. 장소와 가장 완벽하게 어울리는 작품은 지하 전시장과 연결된 공간에 설치된 엘리아손의 ‘Inside the horizon’이었다. 스테인리스 스틸과 알루미늄, 유리, 거울, LED를 이용한 이 설치 작품은 건물의 내부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반사하고 다시 옆에 설치된 물 위에 반사되면서 물·빛·공간에 대한 개인의 느낌을 독특하게 시각화했다.

앞으로 작품이 공개되는 작가들은 에드 아트킨스, 크리스티앙 볼탄스키, 마우리지오 카탈란, 타시타 딘, 모나 하툼, 베르트랑 라비에, 시그마 폴케, 게르하르트 리히터, 볼프강 틸만, 백남준 등이다.

전시 작가들의 명단만 보자면 세계적인 컬렉터 개인이나 기업 미술관에서 선호하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며, 미술 시장에서 가장 비싼 가격을 기록하고 있는 블록버스터 작가들이고, 서양의 현대 미술 작가들에 치우쳐 있다. 아직까지는 루이 비통 재단만의 특별함과 유니크함을 볼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웠다. 루이 비통 브랜드가 세계 각국에서 성공한 글로벌 브랜드가 된 것에 비하면 전시 프로그램은 그다지 글로벌한 것 같지 않다는 필자의 의견에 클라브리 고문은 “재단의 프로그램은 이제 시작”이라며 “향후 한국·일본·중국·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들을 선보일 장기 계획도 있다”고 답변했다.

수잔 파제를 중심으로 하는 루이 비통 재단이 프랭크 게리의 모험심과 자유 정신을 어떻게 이어갈 지, 해를 거듭하면서 미술관만의 고유한 성격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기대해 볼 일이다.

파리 글·사진 최선희 중앙SUNDAY 유럽통신원 sunhee.lefur@gmail.com, 사진 루이 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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