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영희 칼럼

방산 비리 배후의 산·군 복합체를 보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김영희
대기자

국정감사에서 쏟아져 나온 무기거래 비리는 가공할 반국가행위다. 현역과 예비역 고위장교들이 방산업체와 결탁, 공모하고 방위사업청의 묵인 내지는 동조 아래 사사로운 이익의 제단에 물샐틈없어야 할 최상의 전투태세를 희생의 제물로 바쳤다.

 그들은 있어야 할 탐지 능력이 없어 야간 조준사격이 불가능한 대공 벌컨포를 팔았다. 그런 벌컨포는 밤중에 넘어오는 저공침투용 AN-2에는 무용지물이다. 최첨단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의 전투운영 시스템에 장착된 486 컴퓨터는 고장이 잦고, 최신 이지스 율곡이이함은 어뢰기만탄이 바닷물에 부식돼 어뢰방어 능력을 잃었다. 방위사업청은 1만원짜리 USB를 95만원에 사고, 2억원 하는 통영함 음파탐지기를 40억원을 더 주고 사서 국고를 축냈다. 무기 구매에 관한 합참 기록 빼돌리기, 시험성적 위조가 예사로 행해졌다. 그들의 농간으로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된 K-11 복합소총은 오작동의 문제를 안고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지금 군사강국들 사이에는 최첨단 스텔스 기능을 갖춘 5세대 전투기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미국이 개발하는 것이 세계 최대의 방산업체인 록히드마틴의 F-35 스텔스 전투기다. 1대에 1000억원이 넘는다. 중국은 J-20, 러시아는 T-50, 일본은 F-3 스텔스 전투기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자체 개발 능력이 없는 한국은 총사업비 7조3418억원으로 2018년부터 F-35 전투기 40대를 도입하기로 했다. 지난 6월 F-35에서 엔진 결함이 발견됐다는 통고를 받고 공군이 엔진 재설계 의견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방사청은 지난 9월 정식 도입 계약을 체결해 버렸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는 1961년 1월 미국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는 고별연설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방위산업체와 군의 가공할 연합세력이 정책 결정을 부패시키는 영향력(Corrupting influence)을 행사하지 못하게 경계해야 한다. ”이것이 산·군복합체에 관한 최초의 문제 제기였다. 반국가 범죄 수준의 비리를 저질러 온 한국의 군·산 결탁 세력들은 알게 모르게 미국의 거대 산·군복합체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다.

 미국의 산·군복합체는 미국 경제의 필요악 같은 존재다. 미국 기술자와 과학자의 3분의 1이 군사 관련 일에 종사한다. 국방 관련 산업의 상위 9위까지 드는 기업들의 전체 고용인원은 90만 명이다. 방산업체들은 냉전 종식으로 사양길에 들어서는가 싶었지만 분쟁이 끊이지 않는 중동과 새로 열린 동유럽 시장, 미국과 중국이 패권을 다투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다시 호황을 누린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방 확대는 산·군복합체의 블루 오션이 되고, 그 연장선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도 발생했다.

 산·군복합체는 세계 도처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분쟁이 계속 일어나야 사업이 번창한다. 동북아시아에서 그들은 중국 위협론을 과장해서 자극한다. 싱크탱크에 후한 연구비를 뿌려 국방예산 증액, 군비 확장, 그리고 무기체계의 끊임없는 업그레이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보고서를 내게 한다. 괌기지의 확장과 B-1과 B-2 전폭기의 추가 배치와 미사일 방어망 구축도 산·군복합체의 로비·홍보활동과 무관하지 않다. F-35 스텔스 전투기 하나만을 지원하는 의회 의원이 39명이나 된다. 그들은 모두 이 전투기의 본체와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위치한 주 출신들이다(한겨레신문 10월 20일자 보도). 그들의 뇌리에는 아이젠하워의 53년 전 경고는 그림자도 없다. 출신 지역과 회사와 자신의 이익 추구가 전부다.

 미국이 한국에 도입하라고 압박하는 미사일 방어망은 고가의 무기체계다. 미사일 방어망의 핵심은 고고도(High altitude) 미사일 요격 시스템인 사드(THAAD)인데 발사대 6문으로 구성된 1개 포대의 설치 비용이 1조~2조로 추정된다. 한국 정부는 평택 미군 기지에 사드가 배치되는 데 동의하는 대신 사드의 X밴드 레이더가 탐지한 정보를 제공받자고 미국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람직한 해결책이지만 한국이 과연 산·군복합체에 등을 떠밀리는 미국 정부의 압력을 극복할 수 있을까.

 방산 비리를 군피아의 폐단으로만 다뤄서는 안 된다. 한국의 군·산 연합 세력은 큰 톱니바퀴 같은 거대 산·군복합체에 매달린 작은 톱니바퀴다. 둘을 떼어서 방산 비리를 처리는 건 미봉책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산·군복합체는 우리의 통제 밖에 있지만 그 먹이사슬 같은 생태계 전체를 보면서 방산비리를 다루고 사드와 F-35 전투기 도입 문제도 결정할 일이다. 이번에 적발된 비리 관련자들에게는 반국가 이적행위 차원에서 법이 정하는 최고형을 내리고 산·군복합체와의 관계 전모를 밝혀야 한다.

김영희 대기자